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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종|교|칼|럼| 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꿈 이야기

  

올 여름 휴가때엔 섬을 떠나는 일이 없어 오랜만에 섬에서 여름이면 하고팠던 꿈들이 마구 들고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캄캄한 어둠이 없는 이곳의 여름에 밤 도보여행을 하면서 해지고 해뜨는 장면을 보고픈 꿈이 제일 컸지요. 6월 21일 하지에 이곳의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 아름다움을  즐감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지난 성령강림주일에 우리 성당에서 미사때 연주를 해준 루터교 신자 부부와 수녀원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 날 새벽에 덴마크의 전통에 따라  해를 보러 어디론가 간다고 하는 소리에 저의 귀가 번쩍뜨였습니다. 하지날에 이루고픈 저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 되시는 분은 산이 아니더라도 배를 타고 보러 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에 모두의 귀가 솔깃했기에 작은 배를 가지고 있는 이 부부는 6월 21일을 약속하며 떠났습니다.


전 일찌감치 밤을 새는 여행을 감안하여 6월 22일을 휴가신청을 해놓았지요.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변화무쌍한 이곳의 날씨에 따라 21일이 될 지 22일, 23일이 될 지 모른다고해서 전 21일 저녁의 대처방안을 계획하는데 생각과 마음을 쏟으며 수녀원에서든 일하는 유치원에서든 저의 꿈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습니다. 혼자의 여행을 두려움 없이 즐기는 저이지만 집에 남은 수녀님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함께 어둡지 않은  밤길을 동행할 친구가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20일 저녁, 책임자 수녀님이 저물어가는 햇님을 가리키며 저의 상상처럼 해가 지고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차를 몰고 가까운 높은 곳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마고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성당에 있었던 마리사 수녀님이 책임자 수녀님을 바꿔달라고 하더군요. 전화가 바로 저의 방옆에 있는지라 들리는 소리가 분명 밤 배 여행에 대한 것임이 확실했기에 환한 얼굴로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수녀님 역시 미소지으며 제가 벌써 펄쩍 뛰며 좋아하고 있다고 전화기에 말하고 있었습니다.


초대하는 부부에 의하면 21일 저녁에 바다가 아주 조용하고 좋은 날씨이며 밤 11시 15분에 해가 지고 새벽 2시 30분에 떠오르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우와! 하느님이 나의 꿈이야기를 들으셨구나!”하며 저는 방안에서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이 부부를 위해 감사의 카드를 만들고픈 마음이 일어 모아 놓은 티백 종이들 중에 배 그림이 있는 것을 찾아 접어서 파란 바다위에 돛단배들을 만들고 다른 종이들로 태양과 갈매기를 접어서 우리의 꿈 여행을 표현했습니다.


저의 상상은 나래를 타고 카드에 써 넣을 단어들이 저의 머리를 가득채워 유치원에서 종이와 연필을 들고 오후를 보냈더랬습니다.‘아바"라는 그룹의 유명한 노래  I have a dream 이 저의 입속에서 흥얼거렸기에 이 첫 구절을 써 내려갔습니다. 첫 멜로디를  3번 되풀이 하며 저의 마음을  표현해 보았지요. 


이를  쓰고 고치고 하면서 이 꿈은 저의 묵상거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아주 소박한 인간적인 꿈, 소원을 가지게 되고 이를 위해 우리보다 훨씬 전능하신 분께 빌게 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그분이 내 생애의 궁극적인 꿈임을  발견하고는 놀라워하며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1일 저녁, 설레임 가득안고 9시 30분에  수녀 셋, 수녀원에 며칠 머물고 있는 덴마크인 여 신자 한 분 그리고 신부님을 실은 수녀원의 작은 차는  길을 나섰습니다. 땅위의 것들은 아주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었고 하늘의 모든 것들은 구름과 안개에 덮혀 있었지만 이 모습 또한 아름다웠기에  우리의 마음은 그런대로 여전히 들떠 있었습니다. 10시에 이 부부가 살고 있는 작은 부두에 도착하니 벌써 배는 시동이 걸린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도 귀여운 배는 우리를 싣고서 조용한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지요. 바다의 표면이 어찌나 매끄럽던지 한 번 걸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11시쯤에 도착한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는 모터를 끄고 돛을 달아 물결과 바람에 우리 모두를 맡기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배 주위에 갈매기들도 모여와서 우리의 꿈잔치에 참여했고, 배는 때때로 아주 심하게 움직였습니다. 배 안의 작은 공간에서 우리의 밤참 준비를 끝낸 배 주인의 아내는 멀미를 시작했고 이에 뒤지지 않을세라 저 또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 몸으로 이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올 초에 한국 방송국에서 취재온 피디님으로부터 받은 귀미테를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다른 이들은 안에 들어가 잔치상에 버금가는 맛난 것들을 먹고 있는 동안 저와 책임자 수녀님은 밖에 앉아서 딱딱하면서도 담백한 뱃사공들을 위한 비스킷 과자만을 먹었건만 바다를 향해 저의 입을  열어야 할 뻔한  순간이 있었지요. 저의 맞은 편에 앉은 신부님의 얼굴빛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간파한 선장님은 우리의 의향을 물었고 아쉬움의 소리보다는 귀가의 목소리가 더 컸기에 다시 모터를 사용하여 방향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주위의 바다빛이 은빛으로 변하고 있었기에 햇님이 바다 아주 가까이 내려 앉고 있었음이 분명했습니다. 다행이도 돌부처처럼 한참을 앉아 있은 후에야 저의 몸은 정상의 상태를 되찾았고, 저의 입은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 저의 꿈들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이루어졌고 또 다른 꿈들을 꾸며 노래하고 있노라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이곳에서 알게 된 코티브아르 출신의 알리스를 오랜만에 방문하여 그동안 지내온 잔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삶의 궁극적인 꿈들을 이야기할 때에는  얼마나 진지하게 이야기하였|는지 시간이 모자라더군요. 개신교 신자인 그녀도 자신을 지어내신 이와의 깊은 만남 그리고 그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꿈중의 꿈이라고 하더군요.

 

이 꿈을 향해 하루 하루 걸어가다보면 우린 어느 새 그 꿈에 조금씩 닮아 가고 그 꿈에 다다르게 되어 다른 이에게도 꿈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아니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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