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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돌 이야기

종|교|칼|럼|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돌 이야기

  


이곳  페로에 제도의 유일한 성당, 그 둘레에 쳐진 나무 담이 20여년의 비바람에 잘 견디어내고는 이젠 생명의 끝에 달하여 썩어들었습니다. 해마다 페인트칠을 해야하는 경비를 들이기 보다는 이젠 아예 돌담으로 쌓자는 의견이 많아 상상 외의 엄청난 경비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부터 시멘트와 모래, 돌들이 수녀원과 성당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 집들의 담들과 대문들은 그리 높지않습니다. 겨우 허리높이 만큼이고 문도 열쇠로 잠그는 게 아니고 모든 이가 안 밖에서 열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장치이기에 실은 장식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모든 집들과 정원들을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담을 모두 잘라 걷어치운 성당은 이젠 문을 열고 닫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겉 모습 그대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내보여줍니다. 참으로 시원하고, 편하고, 자유스러워 보입니다.  


시간당 지불해야하는 인건비가 엄청나기에 70세를 넘으신 아저씨의 견적이 이 공사를 하도록 뽑혔습니다. 당신 말씀처럼 젊은이가 아니기에 자신의 속도대로 일할거라고 하셨지요. 아니나다를까, 며칠이 지나면서 수녀님들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지요. 어제와 오늘의 일한 흔적의 차이가 도무지 보이질 않았고 엄청난 재료비의 청구서는 벌써 날아오기 시작하고, 언제 이 공사가 끝날 지 모르기 때문이었지요. 이 공사에 책임을 맡고 있는 수녀님은 꿈 속에서도 이 걱정을 했고, 식탁에서 공사의 진행 상황에 대해 물으면 입다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금씩  돌들이 담으로 쌓여 올라가면서 이 아저씨의 훌륭한 솜씨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걱정과 조바심을 조금씩 줄여갔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앞을 지나면서 종류가 다른 두 돌무더기에 눈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나는 야간 푸른 빛이 도는 그리 크지 않은 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밤색이 나는 큰 덩치의 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쓰임새도 당연히 달랐습니다.  밤색의 돌들을 양쪽으로 세우고 그 가운데는 푸른 빛의 돌들로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망치를 들고 밤색의 돌무더기 주위를 돌며 돌들을 관찰하시는 이 석수장이 아저씨의 모습이 제 눈에 선하게 남아있습니다.


우리들 각자를 잘 아시기에  맞는 곳에 쓰시려고 이리 저리 살피시는 석수장이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지요. 우리들이, 그리고 이 돌들이 그저 둥글둥글하지만은 않습니다. 평편한 면이 있는가 하면 울퉁 불퉁 뾰족한 면도 있습니다.  이 석수장이 아저씨는 평편한 부분만을 골라 깨어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 평편하고 넓적한 면의 가장자리의 겉부분만을 조금씩 깨어 내어 돌이 살아나게 하고는 이 면을 겉쪽으로 보이게 놓으십니다. 그리고 뾰족한 면은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다른 작은 푸른 돌들과 시멘트가 섞여 튼튼한 담이 되게 하는거지요. 이 돌들의 틈 사이는 크고 작게 깨어진 돌들로 메꾸시구요. 이 덕분에 성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이든, 성당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이든 이 밤색 돌들의 예쁜 모습만을 보게 되는거지요.


그러나  이 공사 과정을 보지않은 사람은 보이지 않게 숨어서 이 아름다운 돌담을 지탱하고 있는 다른 돌들이 있음을 모를 겁니다. 아니 보았다하더라도 잊어버리고 겉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감상하는 것이 우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무한합니다. 그리고 과학으로 증명하여 내 보일 수는 없어도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우선 발길을 멈출 줄 아는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어야하고, 자신과 주위의 모든 것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이 필요하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맛보고, 듣고, 느끼려면 살아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보이는 것으로만, 들리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면 큰 코 다치기 때문이지요.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의 이면에는 쉽사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또 다른 무엇,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곳은 아시다시피 섬이라서 돌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에선 등산길에 나무 가지에 리본을 달아 이정표를 하지만, 산에 나무 하나 없는 이곳에선 돌들을 여기 저기에 쌓아 길을 안내합니다. 한국의 사찰을 가다보면 군데 군데 길가에서 만나는 돌탑들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돌들로 말하자면 바다와 비바람에 잘 견디어낸 돌들입니다.


그리고 양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는 이곳에선 이따금 지붕 없이 둥근 모양으로 돌들만 얹어서 만들어진 이들의 작은 피난처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산에 올라가 바람이 세게 불면 양띠의 해에 태어난 저도 이곳에 한 마리의 양이 되어 앉아 봅니다. 이 돌담의 높이는 저의 머리 위치만큼이고 바로 옆에는 작은 시냇물이 흘러 참 좋습니다. 가끔 밥을 간식으로 먹고는 냇물에 그릇을 씻어 돌위에 말리는 동안 단소도 불고, 책도 읽노라면 천상 낙원이 다시 없습니다.


한 번은 안개가 바람따라 수시로 왔다갔다 하며 저를 안개속에 가두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저 멀리 바다와 마을들이 다시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안개 속에 군데 군데 우직하게 서 있는 덩치 큰 돌들의 모습이 어느 오래된 유적지의 웅장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여 새롭고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돌이야기의 마지막은 수녀원의 언덕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학교의 공사장으로 갑니다. 교실을 더 지으려고 기초를 다지는 공사에서 언덕의 돌들이 얼마나 단단한지 돌깨는 기계가 세 개나 부러졌습니다. 올 여름 거의 두 달을 돌깨는 소리와 진동에 귀를 막기도하고 멀리 도망치기도 했지요.  돌을 깨는 이에게도, 이를 듣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돌 자신들에게도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움이 탄생하기 위해 돌들은 깨어져야 했고, 석수장이는 흔들리는 기계위에 셀 수 없는 날을 앉아 있어야 했고, 주위의 사람들은 이 소리들을 인내로이 참아야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더불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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