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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정 사비나 수녀] 삶의 꽃꽂이를 하면서

종교칼럼 삶


삶의 꽃꽂이를 하면서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누군가 해 둔 꽃꽂이를 봅니다. 돌과 나무껍질, 푸른 가지에다 꽃 몇 송이를 적당히 놔둔 것을 꽃꽂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봐도 돌은 돌의 자리에, 나무껍질은 또 그 자리에,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참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 사이 꽃 세 송이는, 마치 우연처럼, 태고부터 그렇게 있어왔다는 듯 천연덕스럽기조차 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그냥 제 자리에 존재하는데,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아름다움이신 하느님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 주시는 순간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에 도통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일상의 작은 것들로 이런 마술을 부리는 사람들이 마냥 경탄스럽기만 합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서둘러 일터나 학교로 나가고, 해가 저물어 다시 모이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것들.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작은 토닥거림, 긴장, 행복, 고민, 만족감, 허전함, 실패감... 이 작은 것들로 아름다움을, 행복을 만들어내는 마술은 없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며칠 전 강원도 한적한 기도의 집에 가서 피정을 하고 온 경험 때문입니다. 자녀나 일과 같은, 일상이긴 하지만 삶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중요한 것들을 버려두고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따로 낼 용기를 가진 11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였습니다. 첫날, “지금 이 순간의 느낌, 나를 사로잡고 있는 관심사”를 서로 나누었는데, 그 모두가 “지쳤다”라는 말로 요약이 되더군요. 이유를 듣노라니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하는 직장인(적어도 뒤떨어지지는 않는), 자상하고 현명한(특히 교육에 있어)아빠/엄마, 좋은 남편/부인, 착한 며느리/아들…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요! 물론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소홀할 수 없는 이 역할의 와중에 지칠 법도 하다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쉼”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책임들을 벗어던짐으로써?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아예 체념을 함으로써? “잠시 모든 것을 떠나서 거리를 두고 일상을 바라봄으로써!”가 우리가 찾은 방법이었습니다. 일상이 중요하다 하나 잠시 중단하고서 우리 삶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는 것이 이 피정의 목적이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나를, 내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니 더 나아가 “나는 원래 누구인가?” 핸드폰과 인터넷을 중단하고, 자연 안에서, 침묵 안에 잠겨드는 모습들이 퍽이나 진지해 보였습니다. 마지막 날, 이 “쉼”이 어떠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언젠가 내 꿈이 사라지고 남편의, 아들의 꿈이 대신해왔음을 깨달았다는 분, 내면의 공허를 외적인 활동에서 채우려다 보니 쓸데없이 분주했었다는 분, 아이들에게 지나친 기대와 욕심을 강요했었다는 분... 같은 일상을 조금씩은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꽃꽂이를 할 때에는 가장 먼저 지주를 세웁니다. 전체 꽃꽂이를 지탱해주는 중심 줄기. 제1지주, 제2지주, 제3지주. 지주만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다른 꽃과 부제들이 들어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로 꽃꽂이를 하는 법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우선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을 제 자리에 두는 것. 그러면 다른 것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도 보입니다. 잘 된 꽃꽂이는 각자가 제 자리에 있으면서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조화 속에 참다운 쉼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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