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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방법

사랑의 방법


날이 너무 더워, 얼마 전에 동창 신부님을 만나서 맥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40대 후반의 나이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배려…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그 신부님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 신부님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었답니다. 그 신부님은 어릴 때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에서 지냈답니다. 그런데 당시 그 동네에 서울 아이가 가면, 시골의 또래 아이들이 ‘서울 촌놈’ 왔다며 놀려대면서, 놀아주지를 않았답니다. 자신은 그들과 친구가 되어 들이며, 산이며 그렇게 뛰어 놀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좋지만, 시골 생활이 너무 싫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자신과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 아닌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가 마당에서 키우시던 검정개였답니다. 그 검정개만이 자신이 시골에 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고, 놀아주고, 함께 들이며 산으로 뛰어다녀 주더랍니다. 한 마디로, 동물 이상의 절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검정개를 사랑했던 그 신부님은 무엇이든지 검정개랑은 함께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으스륵한 겨울의 저녁,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손자인 그 신부님이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구워다 주셨답니다. 노릿하게 구워진 고구마는 반으로 툭, 쪼개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맛있는 군고구마였답니다.


이렇게 할머니로부터 고구마를 한 개 건네받은 자신은 호호 김을 불며 한 입을 맛있게 먹다가, 문득 자신의 절친 검정개랑 군고구마를 함께 먹고 싶어졌답니다. 그렇게 검정개 생각이 들자마자, 그 신부님은 개집이 있는 마당으로 뛰어갔답니다. 검정개 역시, 저녁을 먹고 개집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절친이 된 그 신부님을 보자 후다닥, 개집에서 나와, 꼬리를 흔들며 그 신부님을 무척이나 좋아하더랍니다.


반갑게 검정개를 끌어안은 신부님은 그 절친 검정개를 사랑하는 마음에, 잘 익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맛난 군고무마를 그 개가 한 입에 먹을 만큼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검정개 역시 절친이 주는 군고무마를 낼름 받아서 한 입에 삼키려는데, 바로 그 순간 평생 듣도 보고 못한, 시멘트에 쇠 갈리는 듯 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검정개가 미친 듯 날뛰더랍니다.


이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큰 일이 일어났나 싶어 맨발로 마당에 뛰어나오셨는데, 발광을 하는 검정개를 유심히 보던 할머니는 깜짝 놀라 얼어있는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 뭘 먹였냐고.’


그러자 신부님은 ‘좀 전엔 할머니가 준 군고구마 반쪽을 검정개에게 주었다’고 했더니, 그 날 밤 할머니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개들은 뜨거운 것을 못 먹는데, 그렇게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니, 개는 먹는 것인 줄 알고 왈칵 먹고 삼키려다가 입안 전체가 다 데여버렸다는 말씀과 함께! 그 후 몇 일 동안 그 개는 정말 아무 것도 못 먹고, 개집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답니다. 그 자신이 다가가도 꼬리만 흔들어 댈 뿐 말입니다. 


이야기 끝에 신부님은 자신을 친구로 받아주고, 따르던 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개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그것도 방법이 있는 것 같아.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조건 주고 싶은 마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그 사람도 함께 좋아하리라는 생각에 뭔가를 더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성찰해 보아야 할 것 같아. 진정 사랑하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 참 좋은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뭘 많이 주는 것 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 아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스러운 생각, 때로는 그 생각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과적으로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명심해 봅시다. 사랑, 어쩌면 그건 배려의 또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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