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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웃음

행복·웃음

 

변경수 목사
동녘교회


숨넘어갈 듯 웃는 10대 청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을 얼굴에 그려놓고 연기하는 광대처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나의 얼굴표정을 살펴봅니다. 감정노동자의 직업적 웃음이 아닌 가슴이 웃는 진짜 웃음을 짓고 사는 이는 진실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욕망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얼굴웃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웃음과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하늘의 은총으로 주어졌지만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생명을 준 하늘은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내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공기, 물, 자연, 사랑하는 마음 등등… 우주가 떠받치고 있는 나의 생명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하늘과 내가 협력하여 이루는 ‘신인협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에 윤기를 불어넣어주는 행복을 만들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건 신이 바라는 바입니다. 신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살이에서 이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유독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언뜻 듣기에는 비관적인 숙명론 같기도 하고, 삶에 대한 회피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은 인생살이를 긍정적으로 헤쳐나가는데 이만한 사고 방식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으로 바꿀 수 없는 처지와 상황을 낙담하고 비관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인샬라~’하며 툭툭 털어내고 일어설 수 있는 ‘치유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자학하기 보다는 인샬라하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상에서 인샬라의 정신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화과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하박국 3장)”입니다. ‘먹을 것, 거둬들일 곡식, 양이나 소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하나님 한분만 계시면 나는 즐겁다’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경지에 이른 신앙인의 고백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인은 이런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겠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씀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2년 6월 영국의 한 민간재단이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행복지수’라는 국가별 수치를 산출했는데 세계 경제 1위 국가 미국이 105위에 그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질적 만족보다 정신적 만족이 더 큰 행복의 조건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잘 성찰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재물을 하나님과 비교하셨습니다. 그만큼 재물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오를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은 행복을 위해 무엇을 따르겠습니까? 따르려고 합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겠지만 그 행복은 본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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