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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과 치통

월요시론

태종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 고순. 옛날옛적에 27명 조선시대의 왕들을 이처럼 순서대로 외웠던 기억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왕(王)은 한자어이고, 이에 해당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임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임금이란 단어가 ‘치아’와 관련되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에 사용되었던 왕의 호칭 중 하나인 이사금(尼師今)은 떡을 베어 물게 해서 잇자국 즉 ‘이의금’이 많은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의금이 줄어 ‘잇금’이 되었고 다시 변형되어 ‘임금’이란 단어가 생성되었다. 그 당시 치아는 임금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잣대였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의 현명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왕조 오백년을 다스렸던 임금님들 중에서 몇 분들의 치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대통령 치과 주치의도 없었기에 임금님에게 치통이 발생되었다면 그 고통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21세기인 지금도 조선시대 임금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조상님들의 위대함에 감사한 마음을 깊이 새겨본다.


치통으로 고생을 많이 한 임금님으로는 성종, 연산군, 중종, 광해군, 현종, 고종, 순종을 들 수 있다. 한편 세종대왕은 제주에 사는 효덕이란 여인에게 교치(嚙齒: 이갈이)를 고쳐준 것에 대해 감사의 선물을 하사하였고, 세조실록에 의하면 제주 안무사에게 치통을 치료할 수 있는 의녀를 요청하였는데 아마도 세조 가족의 치료를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시대에 치과 진료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는 가씨, 장덕, 옥매, 귀금, 효덕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주도에 사는 여성이었고 의녀라는 점이다. 특히 장덕과 귀금은 한양으로 올라와 혜민서 소속 의녀로 활동하여 성종의 치과 진료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 ‘치아’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면 단종, 선조, 인조, 숙종, 영조실록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님들중에서 가장 치통으로 애를 먹은 사람은 중종이다. 중종은 38년 2개월간의 재임기간동안 무려 20번의 치과와 관련된 기록이 중종실록에 언급된다. 특히 1529년 5월에는 무려 일곱 차례나 중종에게 ‘치통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중종의 치통이 상당히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 만약 성종의 치통을 치료하였던 귀금의 의술이 또 다른 의녀에게 전수되었다면 연산군과 중종은 치통으로부터 해방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밖에도 치과의사들뿐만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는 임금님들의 치과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마지막으로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과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를 이렇게 바꾸어보니 부인할 수 없는 작금의 치과계 현실이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치의가 살펴보니 충치풍치 허벌난데 치의는 한 명 없네
그 시대로 시간이동 가능하면 좋을텐데.


폐업이 속출하니 치과계가 험난쿠나 오십년 황금기가 추억으로 묻혀가네
개원중인 치의들 눈물겨워 하는구나.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 치과 개원생활이라 하여도 치과의사란 직업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정말 소중하고 귀한 일이다. 만약 현재의 치과의사가 연산군이나 중종에게 시간 이동하여 찾아간다면 어떠한 대우를 받을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