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1호에 이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Bainbridge Dental Museum에서도 낙담, 간절과 환희가 있었다. 아침 일찍 클리브랜드 클리닉(Cleveland)을 살짝 구경한 후, 클리브랜드에서 3시간 30분 동안 차로 달려와서 박물관 폐관 1시간 전인 3시쯤에 도착하였다. 분명 치과박물관은 토, 일요일에는 오후 4시까지인데 박물관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내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으니까. 4년 전에 방문했을 때 박물관에서 자원봉사하신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치과 박물관의 옆집과 동네 슈퍼에서 박물관 담당자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허사였다. 마침 세월의 포스가 느껴지는 레스토랑이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가서 주인처럼 보이는 할머니에게 문의하였다. 한국에서 치과 박물관을 구경하러 왔다하니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로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20여분이 흐르니 담당자와 연락이 되었고 15분후에 치과 박물관 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수없이 표시하였고 인증샷도 찍었다. Angje와 Connie 고맙습니다. 건강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Citius, Altus, Fortius)라는 올림픽 구호가 치과 개원가에는 ‘더 싸게, 더 좋게, 더 친절하게’라는 슬로건으로 변화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이제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며, 경쟁 선수들을 돕는 숭고한 올림픽 정신은 점점 천연기념물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치과계의 현실도 올림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전 세계의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올림픽이 있는 것처럼 세계 치과의사들이 자웅을 겨룰 ‘덴탈 올림픽’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성적은 아마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정도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스포츠 올림픽에 참가하여 발군의 실력을 뽐내었던 치과의사들이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어 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93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엘주비에타 크제신스카(Elizabieta Kresinska)는 1963년 폴란드 그단스크(Gdanzk)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한 치과의사로 살았지만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여자 멀리뛰기 종목에서 6m35를 날아 세계 기록 달성과 금메달을 획득하였
태종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 고순. 옛날옛적에 27명 조선시대의 왕들을 이처럼 순서대로 외웠던 기억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왕(王)은 한자어이고, 이에 해당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임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임금이란 단어가 ‘치아’와 관련되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신라시대에 사용되었던 왕의 호칭 중 하나인 이사금(尼師今)은 떡을 베어 물게 해서 잇자국 즉 ‘이의금’이 많은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의금이 줄어 ‘잇금’이 되었고 다시 변형되어 ‘임금’이란 단어가 생성되었다. 그 당시 치아는 임금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잣대였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의 현명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조선 왕조 오백년을 다스렸던 임금님들 중에서 몇 분들의 치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대통령 치과 주치의도 없었기에 임금님에게 치통이 발생되었다면 그 고통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21세기인 지금도 조선시대 임금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조상님들의 위대함에 감사한 마음을 깊이 새겨본다.치통으로 고생을 많이 한 임금님으로는 성종, 연산군, 중종, 광해군, 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