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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치과의사

월요시론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Citius, Altus, Fortius)라는 올림픽 구호가 치과 개원가에는 ‘더 싸게, 더 좋게, 더 친절하게’라는 슬로건으로 변화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이제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며, 경쟁 선수들을 돕는 숭고한 올림픽 정신은 점점 천연기념물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치과계의 현실도 올림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전 세계의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올림픽이 있는 것처럼 세계 치과의사들이 자웅을 겨룰 ‘덴탈 올림픽’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성적은 아마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정도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스포츠 올림픽에 참가하여 발군의 실력을 뽐내었던 치과의사들이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어 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93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엘주비에타 크제신스카(Elizabieta Kresinska)는 1963년 폴란드 그단스크(Gdanzk)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한 치과의사로 살았지만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여자 멀리뛰기 종목에서 6m35를 날아 세계 기록 달성과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녀는 2년 후 생물학 필기시험과 물리 및 화학 구술시험을 통과하여 5년제 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말 그대로 그녀는 지덕체를 겸비한 치과의사였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올림픽 펜싱 경기에 무려 7번이나 출전하였던 여자 치과의사도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스웨덴의 커스틴 팜(Kerstin Palm)인데 그녀는 1969년 스톡홀롬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파트타임 치과의사로 근무하면서 1964년(일본), 1968년(멕시코), 1972년(독일), 1976년(케나다), 1980년(소련), 1984년(미국), 1988년(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그녀의 꾸준함과 성실함은 치과의사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올림픽에서 한번 금메달을 따기도 어려운 일인데 4년 후에도 금메달을 거머쥔 치과의사가 있었다. 1968년 프랑스(Grenoble)와 1972년 일본(Sapporo)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2연패를 이뤄낸 에르하드 켈러(Erhard Keller)는 1973년 뮌헨 치과대학을 졸업한 치과의사였다. 그는 1975년 이후부터는 뮌헨에서 개원중이며 Flying dentist라는 애칭을 갖고 있어 치과의사가 가진 달란트(Talent)의 무한함을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올림픽 정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최고를 향한 도전(striving for excellence), 상호 존중(showing respect), 아름다운 우정(celebrating friendship)이라는 세 가지 올림픽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되어 가고 있는 치과계는 Excellence(글로벌 스탠다드의 실력), Friendship(동업자 정신)과 Respect(노블리스 오블리제)등의 올림픽 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탈출구라 생각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