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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의 해’와 초심

스펙트럼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3년을 뒤로 하고 2014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무뎌지는 기대이지만 한 번 또 겪어봐야 할 일이다.


지난 연말에 지인이신 어느 유명한 고참 가수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중에 지난 해 11월 말경 본인이 준비하고 진행했던 몇 개의 연주회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전에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에 관해서 질문을 했다. 연주를 많이 할 수록 점점 그 긴장감이나 흥분감이 덜 해지는 것 같다고 말이다. 본인은 나름대로는 대학교때 부터 경험을 해봐서 소위 ‘짬밥’은 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가보다. 그런데 가수로의 경력이 40년이 넘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난 지금 예전보다 방송이나 무대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수 천번도 넘게 봐 왔던 방송 카메라가, 헤아릴 수 없이 앞에 앉았던 많은 관객들이 두려우시단다. 그리고 긴장감과 두려움이 없으면 좋은 무대를 펼칠 수 도 없으며 본인도 행복하지 않다고 얘기하신다. 마치 데뷔 때 같은 기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얘기를 듣는 순간 엄청난 고압 전류에 감전된 듯한 충격이 나를 감싸버렸다. 그 분의 연륜이라면 눈 감고도 무대를 마칠 수 있으실 거라 생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역시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냥 내 얘기는 건방진 아마추어의  짧은 생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말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숱한 연습을 거쳐 무대 경험이 이미 경지를 넘은지 오래이겠지만 내 음악을 들어주는 관객들에 대한 겸손함과 고마운 마음이 함축적으로 담긴 얘기리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항상 좋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노력하는 진정한 프로의 자세였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초심을 잃지 않고 그 만의 음악을 펼치고 있었다.


요즘도 매일 하루에 4시간 정도는 연습에 할애한다고 한다. 과연 나는 어떻게 했던거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교만하며 초심을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환자 분들에 대한 겸손함과 나를 믿어주는 고마움을 잊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었다.


제법 좀 연차가 되었다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도 많이 있었을텐데….


몸과 마음이 잘 준비된 상태에서 진료에 임하였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늘 그랬다고 자신할 수 없음에 부끄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또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면 작년 한 여가수는 75세로 은퇴 공연을 가졌다.


어떻게 55년의 가수 인생의 마감이 쉬울 수 있을까만은 과감히 놓아 버리는 용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부터 그만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시곤 했다고 한다.


연주에 참여한 지인의 얘기로는 공연장에선 물론이고 전날 리허설에서부터 눈이 부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손녀를 안고는 이제 하고 싶은 것 하며 쉬고 싶다는 그녀의 회한 어린 소감에 마음이 짠하다. 몸 관리를 위해서 도넛 하나를 함부로 먹지 못하고 매일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하고 콘서트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단다.

 
‘박수칠때 떠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자리였는데 왜 많은 후배 가수들이 줄지어 장미꽃 한송이씩 들고나와 아쉬움을 표하고, 팬들이 같이 울고 기립박수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차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와 끊임없는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가을에는  존경하는 선배이신 교수님의 정년퇴임 축하연을 갖게 되었다. 준비하는 동안 아직은 더 하실 일이 많으신 분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표현이 적당할지 무척 고심하였다.


교수님과 가까운 선배께서 마땅히 축하해 드리는 자리라고 정리해 주셔서 감히 축하연이라 하게 되었다. “학문연구와 후학을 가르치신 오랜시간이 짧게만 느껴지신다”는 소감에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가 너무나 빠른 시간의 열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한 분씩 떠나시는 교수님들, 개업을 그만두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며 한편으로 이제 곧 치과대학 신입생들, 수련의들이 새로 들어오며 개원의, 전문의들이 탄생하는 시기이다.


낯선 세계이지만 첫 발을 들여놓으며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 젊은 분들이라 포부도 대단할 것이다. 그들에겐 나름대로 갖고 있는 초심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려움 속에서도 처음 생각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즐거움을 부디 맞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게다가 그 초심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떠나시는 분들이나 새로이 오시는 분들 모두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그 분들께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며, 더불어 우리 치과계의 안녕과 축복을 간절히 빌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