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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속에서 인생을 엿보다

종교칼럼

중독이 무엇인지를 요즘 확실히 경험하고 산다. 벌써 6개월째다. 지인에게서 구피라는 아주 조그마한 열대어를 선물받은 후 일어난 현상이다. 다 자라봐야 손가락 한마디 남짓한 크기에 치마처럼 화려한 꼬리를 가진 구피는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애틋한 대상이다. 길을 걷다 멈춰있던 자동차의 출발하는 모습에서 구피의 움직임을 연상하는 일은 다반사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관람한 대가로 어깨가 안 움직여 한의원을 찾아 침 맛을 봐야 했던 일, 너무 안력을 써서 들여다보는 바람에 눈이 뻑뻑하여 안과를 찾았던 일 등 웃지못할 중독의 후유증들을 맛보아 왔다.

우리집 구피들은 깨어있는 동안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양 분주히 움직인다. 그래봤자 행동패턴은 몇 안된다. 먹고 연애하고 싸우고 자는 일이다.

먹이반응은 신기하고도 재미가 있다. 배가 부르면 누가 지나가든 아무 관심도 없다가 배고플 시간쯤 되면 앞을 지나다니기가 미안할 정도로 이리저리 내 눈치를 보며 모여든다. 내 위대한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유일한 순간이라 일부러 왔다갔다 장난을 쳐보기도 한다.

이들의 연애는 도가 지나치리만치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기가 높은 암컷은 서너마리의 수컷이 몰고다니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가 한두달 후면 배가 남산만 해져서 새끼를 낳곤 한다.(참, 구피는 태생이다. 그 작은 몸에서 새끼가 나오는 모습이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낳아놓고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을 잡아먹는다! 새끼 구피는 이웃 구피들에게도 최고의 먹이인 것은 두말 할것도 없다. 그러니 내가 눈이 아프도록 관찰해서 달성해야 할 사명은 바로 새끼구피 구하기이다.

역시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는 싸움이다. 무엇 때문에 골이 났는지 도무지 알수도 없는 지점에서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을 끈덕지게 몰고 다니다가 머리를 맞대고 빙글빙글 돌며 싸우는 양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암컷을 사이에 두고 빈정이 상해서 시비가 붙었으리라. 암컷들도 싸울 때가 있다. 저녁이 되면 조개동굴이나 넓은 수초 잎을 하나씩 체급 순으로 차지하고 나서는데, 더 안락한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격렬한 몸싸움 이 벌어진다. 그런 연후에는 자기집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온 몸에 독을 품고 사투를 벌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에서 나의 위치는 그들의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제3의 눈, 초월자의 시선을 지닌 존재이다. 이처럼 투철하게 자신들의 생로병사는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그들끼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할 때가 많다.

우리네 인생을 초월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어항속의 열대어들과 달라보이지 않으리라. 분주하게 생활하고 짝을 구하고 싸우고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순간들마다 조금만 호흡을 가다듬어 어항속 열대어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심경이 되어보면 삶의 여유와 지혜가 생길 것이다. 그래,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장오성 교무
원불교 송도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