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맑음동두천 14.1℃
  • 맑음강릉 20.1℃
  • 맑음서울 15.4℃
  • 맑음대전 14.5℃
  • 맑음대구 18.8℃
  • 맑음울산 16.8℃
  • 맑음광주 15.6℃
  • 맑음부산 16.0℃
  • 맑음고창 12.4℃
  • 맑음제주 15.6℃
  • 맑음강화 13.7℃
  • 맑음보은 13.5℃
  • 맑음금산 14.2℃
  • 맑음강진군 12.8℃
  • 맑음경주시 14.6℃
  • 맑음거제 16.6℃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초심(初心)

Relay Essay-제1963번째

제갈공명은 교묘한 계략을 펼쳐 사마의가 이끄는 조예의 군사를 호로곡이라는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사마의의 호기심을 이용하여 말 모양의 수레를 만들어 그 위에 잘 타는 군량을 싣도록 유도하고 입에는 화약을 숨겨두었다. 그 말은 그리스 병사를 숨긴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라 호로곡의 목마였던 셈이다. 건기였던 그 때, 천지는 메말라 있었고 공명은 화공을 이용하여 삼국이 마치 솥(鼎)의 세 발처럼 이루고 있던 균형을 마침내 깨뜨리려는 시점에 와 있었던 것이다. 호로곡 위쪽의 촉나라 매복 병사들은 깃털 부채의 신호에 맞추어 활과 노(弩)에 불을 붙여 계곡아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유인당해 호로곡에 갇힌 위나라 병사들은 출구가 없는 불지옥에서 비명을 지르며 몰살할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때 공명은 이겼다고 생각했으리라. 길고 지루한 살육의 악순환의 고리는 이 불바다 속에서 끊어지고 위나라의 멸망으로 솥의 한 발이 부러져 나가면서 한나라 유방의 피를 이어받은 임금을 중심으로 촉에 의해 대륙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으리라.

삼국지를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항상 드는 의구심이 있다. 애초에 공명이 칩거하고 있던 시절에 유비를 삼고초려 시켰던 이유는 유비가 제왕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공명은 공부함으로써 하늘을 보고 시대의 영웅들이 나오고 스러짐을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신묘한 재주를 가졌더라도 본인의 시대에는 대륙통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유비의 진심, 그 간절함에 세상에 나오기는 하였으나 왜 하늘의 뜻을 알고 있었던 공명이 대륙통일의 헛된 목표를 향해 갔는지? 촉나라가 한중의 기름진 땅에 자리를 잡게 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명민함이 어느 시점부터 무디어 졌는지?

나는 공명의 마음속에 관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관우를 굳이 살리려 하지 않았을 때부터일 수도 있다고 본다. 공명이 보기에도 관우의 지력은 공명만 못하였으나 무예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인품에 깃들인 고귀함, 사람을 감화시키는 리더십은 공명에게 긴장감을 주었으리라. 자신 없는 자리에서 이미 이루어져 버린 도원결의의 결속(結束)에 공명은 스며들 수 없었고 설사 시간을 돌이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할지라도 이성적인 공명의 성격상 복숭아 꽃 휘날리는 계절에 술 마시며 의기에 부풀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결의부터 하는 그런 감성적인 자리에 적극 동참하였으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관우가 목숨을 잃은 후에 장비와 유비의 감정적인 반응은 공명이 보기에 참으로 당황스러웠으리라. 위나라를 제압해야 할 때에 단지 관우를 죽였다는 이유로 오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길 줄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 이후에 장비가 어이없이 죽고 유비도 약관의 어린 오나라 군사 육손에 의해 패배한 후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이미 공명도 당황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비의 후계자는 유선. 조자룡이 혈혈단신으로 유선을 품고 적진을 뚫고 나왔을 때 유비가 화가 나서 아기를 바닥에 던져서 바보가 되었다는 바로 그 유선이 아닌가. 사마의를 제외하고 나 이외에는 대업을 이룰 사람이 없다는 왜곡된 현실파악이 공명을 자꾸만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에 이 천재가 폐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몸이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목숨이 붙어 있을 때 중원을 결단내야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으리…’하고 혼잣말 하는 대목에서는 냉철함 보다는 조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호로곡 안이 불바다가 되어 몰살하기 직전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물로서 그 불이 제압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면서 공명은 수십만의 위나라 병사들을 불로 태워 죽였던 적벽대전과 남만 정벌 때 맹획을 제압하기 위한 반사곡의 화공(火攻)을 떠올렸다고 한다. 공명은 불로 태워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 하늘이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며 탄식하였고 사마의는 죽다 살아나 웃음을 터뜨린다. 호로곡 전투 이후에도 공명은 하늘을 감명시켜 보려고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등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실패하고 때가 이르러 운명하였다. 이후에 삼국은 조씨에서 사마씨로 넘어간 위나라에 의해 통일되고 이후에 북방민족에게 밀려 남으로 내려가 위진남북조 시대가 열리게 된다. 공명이 대륙이 자기의 손으로 통일되지 않을 거라는 처음 그 깨달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면 적벽대전 이후에는 더 이상의 살육이 없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스모스’라는 필작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한 칼 세이건 박사가 우리 지구를 표현할 때 우주의 한 푸른 점이라고 하였다. 공명이 아무리 지혜로운 전술을 펼쳤어도 푸른 점 위에서 펼친 한바탕 재미있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는 거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인류 역사의 도도한 흐름조차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나는 초심을 잃지 않고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