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 흐림동두천 11.0℃
  • 흐림강릉 15.7℃
  • 서울 12.3℃
  • 구름많음대전 22.3℃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5.3℃
  • 구름많음광주 21.1℃
  • 맑음부산 22.7℃
  • 흐림고창 14.2℃
  • 맑음제주 22.1℃
  • 흐림강화 11.2℃
  • 구름조금보은 22.8℃
  • 맑음금산 22.8℃
  • 맑음강진군 23.3℃
  • 구름많음경주시 28.1℃
  • 맑음거제 22.5℃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사생활을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

월요시론

가을은 참 예쁘다.
가을은 물들게 한다.
가을은 배부르다.
초목들이 여름의 기억을 벗고 하나둘 가을빛에 물든다.
빨간빛 단풍들이 산꼭대기에서부터 야금야금 마을로 내려온다.
가을은 참 고요하다.
할 말이 없고 입을 다물게 한다.
무언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가을은 참 고요하다.

그런데 2014년 10월 우리 대한민국의 가을은 고요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입을 열어 소리치게 한다.
국민 모바일 메신저나 다름없는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이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온라인 게시물을 즉시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가가 추진한다고 한다.

카카오톡은 주변의 지인들과의 소소한 대화가 오가는 곳이며 때로는 공적인 업무의 보조용 즉, ‘나’의 계좌번호나 신용카드번호, 비밀번호 등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이러한 메신저의 특성상 한 사람의 대화록을 압수수색하면 대화방에 연결된 수많은 ‘나’의 정보도 함께 털리게 된다. 그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나중에 사용될 수도 있으니 안될 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텔레그램으로 망명한 국민이 3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헌법은 모든 ‘나’들에게 사생활을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다.

잠시 법률적인 용어를 생각해 본다.
감청영장은 실시간 통화,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것이고 압수수색은 사건 후 서버 저장 메시지 등을 강제요구하는 것인데 맘대로 명예훼손을 판단해서 사이버게시물 삭제를 추진한다면 이는 안될 말이다. 

최근 카카오톡과 밴드, 네비게이션 등을 둘러싼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불안감도 크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이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의료 정보가 대량 유출된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법치국가라면 하루빨리 관련법을 개정해서 함부로 개인의 의료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하고 의료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된 뒤에는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시행되기 시작한 새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 보유한 주민번호 3자 제공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치과에서도 환자의 차트장에 열쇠를 채워서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하면서 정작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는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카카오측에서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본다.

국가 원수 모독죄나 유언비어 유포죄라는 황당한 죄목으로 시민의 입을 막던 과거 군사독재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시절이다. 의료인들은 환자분들의 개인정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일 의료정보 수천 건이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한다면 이 불편한 진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정우 서울시치과의사회 25개구회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