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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나타났다?

Relay Essay-제2047번째

지하철 1호선, 오늘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한 체 겨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치이고 구겨지고, 그래도 짜증보다는 체념이 먼저 드는 것은 어제도 그제도, 출근길 지하철이란 늘 똑같기 때문이다. 오늘이라고 뭐가 다를까?

같은 시간 송내역 3-3 같은 위치에서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8시 50분 즈음 서초역에 내려 회사로 걸어갈 것이며, 똑같은 인사로 아침을 시작할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밥집에서 한끼 때우고 근무를 마치면 또다시 퇴근 인파에 묻혀 집으로 돌아가겠지. 평온하다면 평온한, 그러나 따분하면 따분한 너무나 친근한 일상이다.

그러나 오늘은 무언가 다르다. 갑작스러운 침묵과 함께 전철 내 경직이 느껴진다. 뭔지 모를 이상한 예감에 스마트폰을 치우고 주변을 돌아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창 밖 한 곳을 향해있다. 시선을 따라 내다본 그곳에는 접시 두 개를 붙여놓은 듯한 은색의 찬란히 빛나는 커다란 물체가 유유히 떠가고 있다. 그 그림자가 한강을 서서히 뒤덮으며 다가온다. 그렇다, 미확인 물체, 바로 UFO다.
내 눈앞에 UFO가, 외계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이 어찌 흥분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 글을 잃고 있는 당신도 조금씩 마음이 설레어온다면,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험과 환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출근길에 거대한 UFO가 나타난 적은 물론 없다. 단지 출근길 답답한 지하철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마음이,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내게는 어쩌면 UFO가 나타나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상상의 최후의 보루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철 역에서 부딪힌 웬 남자의 뺨을 때리고, ‘당신 같은 여자 처음이야’라는 얘기를 들으며 재벌 3세와 연애하는 꿈을 꾸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이미 알고 있다. 로또에 맞고 크루즈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기에는… 벼락맞을 확률보다 적다 하니 꿈도 꿔지지 않는다. 서른 중반, 서서히 현실을 깨닫고, 드라마는 드라마, 영화는 영화라는 사실을 체감할 때 즈음.

그래도 적어도 외계인이 있다 없다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니, 재벌 3세나 로또, 혹은 아이언맨과 하늘을 나는 상상보다는 UFO가 나타나고 외계인을 만나는 것이 내게는 더욱 현실성 있는 일로 다가온다.

과히 녹록하지 않은 삶을 서서히 알아갈 나이. 꿈에서 깨어나고,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여 나가는 나이. 그래도 지하철 안, UFO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작은 소망은 적어도 무표정에서 깨어나 슬그머니 미소지을 수 있는 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내게는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당신, 혹시 오늘 나처럼 UFO가 나타나는 꿈을 꾸지는 않는지, 아니면 좀비와 대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세 용을 타고 날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당신도 어쩌면 당신의 마지막 환상을 붙들고 일상을 즐길 하나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부끄럽다면? 걱정하지 마라, 적어도 한 사람은 당신의 환상을 지지하고 있으니,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당신 옆 그 사람도 당신과 같은 꿈을 꾸고 있을테니.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타며 창밖 하늘을 올려다본다. 외계인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이주선 휴네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