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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턴

월요시론

군복무중 휴가를 나온 아들과 ‘인턴’이라는 영화를 봤다.

치대 공부를 한 필자는 인턴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모든 의사들이 그렇듯이 의사들에게 있어서 인턴과정이란 그야말로 악몽에 가까운 기억이다.

수련의 과정에 있는 인턴은 턱없이 잠이 부족하고 응급에 밀려드는 환자들.
그리고 선배의사들, 교수님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힘겨운 시간들의 연속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티켓을 산 필자는 그런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힘겨운 견습 과정속에서 궁극에는 보람을 찾는다는 약간은 뻔한 스토리의 영화….

영화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40년간의 직장생활을 은퇴한 70세의 벤은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시간을 촉박하게 쪼개가며 일해야 하는 젊은 CEO 줄스에게는 회사의 사회적 이미지를 위한 방편으로 만든 시니어 프로그램에 지원한 시니어 인턴 벤의 등장은 반가울리 없다.

젊은 동료들의 당혹스러운 시선속에서 첫 출근한 벤은 배정받은 자리에서 책상을 정돈하고 클래식한 가방속에서 아날로그한 물품들을 꺼내 놓는다.

스마트한 기기들을 사용하면서 급박하게 움직이는 다른 동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곧 도태될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벤은 부드러운 말투와 그의 연륜이 묻어나는 태도로 젊은 동료들의 멘토가 되고 결국은 줄스 인생에 진정한 벗이 된다는 이야기의 영화.

이 영화를 보고 난후 예상과는 달리 커다란 감동을 받은 나에게 십여년 후 나의 은퇴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나에게 인턴이란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고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또 한번의 인턴이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은퇴후 새로 시작하는 내 인생에 거쳐야 할 나의 인턴과정은 어떤 모습일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수련과정은 있다.
젊은 시절에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혹은 전문가로 가는 과정중에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동화되는 과정이 또한 인턴이라 할 수 있겠다.

큰회사의 임원이었던 벤도 젊은 벤처 기업안에서는 인턴이었다.

만약 벤이 지난날의 그의 스펙을 내세워 젊은 동료들을 무시하고 무조건 그의 방식을 고집했더라면 그의 인턴과정은 수포로 끝났을 것이고 세대간의 어떠한 공감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나의 인턴과정을 돌이켜 보게 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기 위한 인턴과정이었으므로 더욱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었고 그걸 알지만 힘들었던 기억들만으로 가득차 있던 인턴시절이 문득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영화속에서 벤은 말한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뿐. 하지만 내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있다.”

나는 내안에 영원히 남아있을 음악을 위해 훗날 기꺼이 새로운 나의 인턴과정을 멋지게 해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분명 그것은 또 한번의 아름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가 곧 해야 할 인턴과정을 열심히 해내길 바란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로 인해 훗날 멋지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있을 테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종훈 연세치대 구강내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