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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봄을 기다린다

종교칼럼

각자도생의 지옥을 연상케 하는 현실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땅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마다의 모습으로 돋아나는 새싹들이 신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사철가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에 쓸쓸하더라.” 어제의 청춘이 오늘은 백발로 변해 버린 세월의 덧없음이 이 노래꾼을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느끼는 쓸쓸함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덧없는 세월이 아니라 덧거친 세상이 우리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쓸쓸함이다.

거리를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우리 시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함석헌 선생은 거리를 걷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탄식을 터뜨린다. “참 고운 얼굴이 없어?/하나도 없단 말이냐?/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아/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가슴이 그저 시원한/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시 <얼굴> 중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그런 얼굴 하나 보고 가자는 것인데 그 얼굴을 도무지 만날 수 없으니 문제이다.

예쁜 얼굴, 잘 꾸민 얼굴은 많다. 그러나 숭고함이 느껴지는 얼굴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종교인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이다. 고집스런 얼굴, 뻔뻔한 얼굴, 간사한 얼굴, 기름기가 번지르르 흐르는 얼굴, 지친 얼굴이 많기도 하다. 남을 가리킬 것 없다. 내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참’을 찾아가는 영혼의 지향을 잃어버린 채 자신에게 맡겨진 ‘노릇’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기 불화에 시달리는 이들의 얼굴에 신령한 빛이 머물 리 없다.

17세기의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1622-1673)의 희곡 <타르튀프>가 떠오른다. 몰리에르는 그 작품에서 종교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타르튀프는 경건한 신앙인인 척하면서 실은 돈과 음식과 여자를 탐하는 사람이다. 그는 파리의 부유한 시민인 오르공의 식객이 되어 그 집에 머물고 있다. 타르튀프가 타락한 인물임을 알아본 손위 처남 클레앙트가 오르공에게 그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오르공은 타르튀프를 변호한다. 그는 정말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무 것에도 애착하지 말라고 가르칠 뿐 아니라, 교회에서는 온화한 얼굴로 무릎을 끓고 앉아 열렬하게 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신앙의 기쁨에 충만해서 한숨을 내쉬며 수시로 바닥에 입을 맞추어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궁색한 것 같아 선물을 보내면 일부를 돌려보내고, 그걸 되돌려받지 않으려고 다시 보내면 기어이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곤 한다는 것이다. 이만 하면 정말 경건한 사람 같지 않은가?

하지만 클레앙트는 오르공이 위선과 신앙, 가면과 얼굴, 유령과 사람, 가짜 돈과 진짜 돈을 구별할 줄 모른다며서 그를 책망한다. “그자들은 이해타산을 밝히는 음험한 영혼으로 신앙을 장사와 상품으로 생각하고 거짓된 눈짓과 꾸민 믿음으로 신용과 위엄을 사려” 든다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자기 확장욕 뿐이다. 클레앙트는 진정한 신자의 특색을 이렇게 밝힌다. “그들은 덕을 허풍스레 과장하지도 않고, 그 끔찍한 허영을 부리지도 않아. 그들의 신앙은 인간적이며 까다롭지 않지.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지도 않는다네. 그렇게 남을 뜯어고치려 드는 걸 지나친 교만이라 생각하는 거지.” 그들은 남의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법이 없다. 온 정성을 다해 옳게 살려 애쓸 뿐이다. 이런 이들의 얼굴빛은 늘 온화하다. 적대적이거나 배타적인 눈빛으로 누군가를 쏘아보지 않는다. 드러난 모습 이면에 가려진 상대방의 아픔과 슬픔에 조응할 뿐이다. 그는 있음 그 자체로 누군가의 품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 우리 삶은 빈곤하다. 욕망의 진구렁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를 견인해 줄 어떤 인격과 만나야 한다. 인간의 본능 너머의 세계를 말 없이 가리켜 보이는 존재가 사라질 때 세상은 전장으로 변한다. 우리가 기원하지 않더라도 계절의 봄은 오게 마련이지만 영혼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 없이는 이 차가운 겨울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지금 우리 내면의 뜨락에는 어떤 꽃이 피어나고 있는가? 오늘 우리 얼굴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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