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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에 가혹 성범죄 ‘주홍글씨’ 이대론 안된다

벌금만으로 면허취소 땐 억울한 피해자 양산

진료행위 중 성범죄로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개선방안이 발표되면서 의료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는 의견이 재점화되고 있다. 그동안 다른 전문직종과 달리 의료인에게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이 적용돼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과도한 취업제한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대 국회의원들이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박탈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을 잇따라 발의함에 따라 이중처벌·과잉처벌이 될 수 있다는 불만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서울에서 개원하고 있는 A 원장은 “성범죄를 범한 의료인에 대해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의료인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의료인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이미 형법으로 처벌받은 사안에 대해 면허취소까지 한다면 이중처벌일 뿐만 아니라 의료법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이유로 자격정지 처분을 규정하고 있는데 면허취소는 부당하고, 환자가 법안을 악용할 소지가 있으므로 자율규제를 통해 면허관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왜 의료인만?

아청법 제56조 제1항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의 취업제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타 전문가직역은 취업제한대상 및 기관에 해당하지 않고 의료인과 의료기관 만이 포함돼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표 참조>.

실례로 노래방에서 성추행한 타 전문직종의 경우 ‘견책’이라는 자율징계를 받았지만 취업제한이 적용되지 않은 반면 이보다 처벌성이 약한 노래방 성추행 의사는 10년간 의료기관에 취업을 제한당한 사례가 있다.

특히 치과의 경우 환자 신체에 대해 일대일 접촉이 수반되는 진료행위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억울한 성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의료인이 성범죄 위험성에 항상 노출돼 있다는 점은 오히려 타 전문가직종과 비교할 때 불리하다. 특히 성추행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를 기준으로 범죄의 성립이 결정되는 탓에 의료계로선 취업제한이라는 행정처벌은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건의료법윤리학을 전공하고 이와 관련한 연구논문을 작성한 김상구 씨는 “타 전문가직역을 취업제한에 포함시키기보다 성범죄 의사에 대한 취업제한의 형식이 아닌 합리적인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 10년 취업제한 “너무해”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 10년간 진료를 금지한 아청법은 개정 초기부터 의료인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어왔지만 최근까지 시행돼 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게 10년간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최근 내려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사실상 의료계로선 의료인 성범죄로 인한 취업 제한이라는 제도 자체가 폐지되길 바라겠지만 성범죄에 점점 엄격해지는 사회 분위기상 의료인의 바람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청법의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공청회에서 범죄의 유형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법 개정 과정에서 의료계 단체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

의료계는 벌금이 아니라 금고형 이상에 한정해 적용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으며, 아동청소년을 위한 법이라는 기본 취지를 고려할 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 그간 의료계의 의견이었다.

대전의 한 원장은 “악의를 가지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료인은 엄중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아청법에 남아 있는 위헌적 요소들은 전 의료인이 단합해 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청법 NO, 의료법서 규율해야

또 법 체계상의 문제점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법 체계적으로 의료인의 면허부여자격과 유지요건에 대한 통합적인 규정체계를 갖고 있는 의료법으로 일괄해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이 의료법 상에 의료인의 성범죄를 추가해 면허제한사유로 하고, 취업제한을 의료법상 면허정지 및 취소규정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아청법 관련 토론회에서 장성환 변호사는 “아동·청소년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의료인의 성범죄로 인한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제한 조치는 아청법의 입법 목적과 직접 관련성이 없고, 오히려 의료인의 자격 및 지위에 관한 사항이므로 의료법에서 규율하는 것이 법체계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의료인 성범죄에 대한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의사의 성범죄를 의료법에서 규율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행 의료법의 체계 내에서 의사의 성범죄를 ‘의료인의 품위훼손’ 행위로 규정해 기존의 자격정지 사유에 포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밝혔다.

# 벌금으로 면허취소라니?

의료계에서는 성범죄 관련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B원장은 직원들을 야단쳤다. 그랬더니 직원들은 원장이 성추행했다고 고소해 법정 구속됐다. 미혼인 C 원장은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러자 그 여자친구는 “나와 헤어지면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다른 D 원장은 사랑니 발치를 하다 여성 환자가 덮고 있는 에이프런에 진료 기구를 무심코 놓았는데, 하필 여성 환자 가슴 인근에 진료기구를 놓아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이 같은 억울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면허관리 강화 방침 중의 하나로 성범죄로 벌금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지난 19대 국회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박탈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이 잇따라 발의된 바 있다. 이 같은 방안이 제도화된다면 결국 의료인에게 ‘덫’으로 작용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으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성우 총무이사는 “의료인 성범죄 처벌과 관련, 의료인에게 가혹한 측면이 다분하다“며 “진료실 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와 진료실 외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다른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벌금만으로 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과중한 처벌이다. 치과의사면허와 관련, 치협 면허 관리 TF를 통해 관계 당국에 치협의 입장을 적극 전달하는 등 치과의사 권익보호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