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미국연수 때 필자가 일하던 실험실에는 중국대륙에서 온 연구원들이 많았다. 당시 중국 의과대학에서 성적 좋은 졸업생들은 대개 임상보다 기초전공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기초전공을 해야 미국 내 실험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실험실의 차이빈이란 친구가 그랬다. 그는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녔으며, 점심은 오후 3시쯤 느지막이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중국에서 온 연구원들은 너나없이 다 가난해 보였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나라가 IMF 경제위기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여유롭고 때깔도 좋았다. 중국을 세계 최빈국의 하나라고 소개한 책들은 도서관과 서점에 널려 있었다. 중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가장 오랜 문명국가였고 우리가 수백 년간 종주국으로 섬겨온 중국이 아닌가. 귀국 후 나는 현대중국의 수수께끼 같은 쇠락을 풀어줄 두 권의 책을 만났다. 미국 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On China)’와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대항해시대’이다. 이른바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걷어낸 주역인 키
미국 동부 보스턴의 3월 중순 공기는 아직 우리 한겨울만큼이나 차다. 찰스강을 건너는 하버드 다리에서 맞는 매서운 강바람과 길가에 아직도 허리높이까지 쌓인 눈은 이번 겨울 이곳 날씨가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17세기 초 첫 이주자들이 맞닥뜨린 뉴잉글랜드의 겨울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혹독한 자연은 이들에게 오히려 생존을 위한 지혜를 찾아내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초기 이주자들의 후예는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라는 거대한 창의의 용광로를 이곳 보스턴에 세웠으며, 여기서 만들어진 지식의 결과물들은 현재 켄델/MIT 지하철역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다. 연도별로 나열된 이 긴 목록은 세상을 바꾼 인류 최초의 발명품들이 매년 하나꼴로 이 지역에서 탄생했음을 말해준다. 더 놀라운 것은 창의와 발명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는 진행형이란 점이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시피 새로운 연구소, 특히 IT와 BT가 연결된 융복합 분야의 기업연구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여기서 일과를 마친 젊은이들이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하버드 다리 위를 줄지어 달리고 있다. 보스턴은 활력이 넘치는 젊은 도시이다. 올해로 93회를 맞는 국제치과연구학회(IAD
우리나라 국립묘지 격인 현충원의 시작은 서울 한강너머 동작동에서였다. 6·25 직후인 1955년 설립되었으니, 올 7월이면 만 60주년을 맞는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국립묘지라는 게 없었을까?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국체 자체가 없었으므로, 국립묘지란 있을 수 없었다. 굳이 살핀다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 또는 징용돼 갔다가 사망한 조선인 중 일부가 일본인 전범과 나란히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는데, 이는 지금도 한일 양국 간의 미해결 역사문제로 남아 있다. 경술국치 이전 조선에도 국립묘지가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세워진 장충단(奬忠壇)이 그것이다.두 갑자 전인 을미사변(1895)에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당시 순사한 조선 장병들을 기려 남산 아래 제단을 만들고 ‘나라에 대한 충성을 장려한다’는 뜻에서 장충단이라 이름 하였다. 곧이어 임오군란, 갑신정변에 순절한 문신들도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포함하여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제사지냈으니, 조선의 어엿한 국립묘지였던 셈이다. 이런 장충단이 일제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었다. 세워진 지 8년 만에 폐사된 빈 자리에 총독부는 벚꽃을 심어 ‘창경원’처럼 ‘장충단
세상을 보는 틀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정물이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전 화가는 먼저 엄지와 검지로 자기만의 프레임을 이리저리 만든다. 같은 대상이라도 화가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것은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부 프랑스 아를에서 함께 지내던 시절 고호와 고갱이 그린 의자 그림은 프레임에 따라 그림이 얼마나 상반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고갱을 붙들어두려는 고호와 지긋지긋한 아를을 벗어나려는 고갱의 서로 다른 속마음만큼이나 같은 의자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극명하게 달랐던 것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이다. 세상을 대하는 관점, 인간에 대한 인식,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프레임이 제각각인 마음의 창 때문이다.인간의 마음과 행동과정을 다루는 심리학은 최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 분노 등을 약물이나 상담을 통해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주된 관심이었다. 그러나 1996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셀리그만 교수는 심리학이 인간의 긍정적 변화와 성장을 돕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며 새로운 프레임의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을 제안하였다. 인간의 긍정적이고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