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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매고 축구골대 앞에 서다

시론

1938년 독일生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독일에서 경제학박사, 스위스에서 공학박사, 미국하버드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력에 걸맞게, 1971년 국가간의 다양한 이해구도와 갈등관계를 발전적 시각에서 설명하는 다중관계자이론(multistakeholder theory)을 제안하며, 영향력 있는 국제민관협력기구인 ‘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한, 소위 사회과학의 통섭을 이룬 인물이다. 이러한 선지자적 인물이 21세기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임을 선언하고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라고 역설하며, ‘이번은 다르다!’라는 강한 논조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넓은 범위의 강한 충격을 설파한다.

정치, 문화, 산업, 군사, 교육, 의료 등 인간의 삶 모든 부문이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는 교시적 담론에 지구촌 전체는 열광하고 술렁인다. 일천한 필자의 지식과 생각으로도, 인류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된 근대이후에도 국가간의 평화와 지구환경보존의 사상과 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래에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지는 않은 듯하니, 서글프지만 여전히 이런 유물론적 가치관들에 기반을 둔 생각과 움직임이 지구촌 구성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돌파구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닌가 싶다.

제4차 산업혁명은 그저 잠시 떠도는 헛소문이 아니고, 분명히 다가오는 실체이며 슈밥의 영감과 통찰력은 매우 정확하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며 많은 선택과 집중을 행해야하는 개인과 사회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살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본다. 예측이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선 뭔가라도 좀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비난을 덜 받을 것 같은 느낌에, 종종 근거없이 뭔가를 하게(do something)되는데, 이를 일컬어 ‘행동편향’이라고 한단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습성은 위기상황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 때 생존이 위태롭기 쉬운 원시적 또는 극한적 환경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해당분야 전문가들은 설명하는데, 전형적인 예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골키퍼들이 공이 날아오기도 전에 좌우측을 정하고 미리 몸을 날리는 대응법을 택하는 현상이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필자 역시 어떤 선택대응의 상황에서 남들 눈을 의식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실패했을 때 보다는, 무언가 시도하다가(성패의 확률우위가 검증되지 않은 행동일지라도) 실패하는 편을 택한 경험이 여럿 있다.

살다보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사막을 여러 날 걷느라 목이 타들어가던 나그네는 좌판을 벌이고 넥타이를 파는 상인을 만났다. 나그네는 지금 자기에겐 넥타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물이 필요하니 물을 팔라고 하지만, 상인은 자긴 넥타이만 팔고 물을 사려면 여러 언덕을 넘어 한참을 가야하는데, 나그네가 알아듣기 어려운 방언으로 넥타이를 사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 같다는 얘기를 계속하며 넥타이만 거듭 권한다. 나그네는 납득할 수 없는 넥타이 구매제안을 뒤로하고 여러 언덕을 넘어 물파는 가게에 어렵사리 당도한다. 그런데 굳게 닫힌 물가게 철대문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이 가게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황당한 말이 씌여있다.

무릇 모든 변화의 본질은 무상함이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측 불가한 요소들을 내포한다. 커다란 변화를 전제로 하는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도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을 그것이 슈밥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큰 충격일지, 그 보다 훨씬 미미할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행동편향의 경솔함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방언이라고 넥타이장수가 하는 얘기를 쉽게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신중하기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다. 이 시대는 참가자들에게 과감히 넥타이를 매고, 축구골대 앞에 서서 경솔히 움직이지 말아야하는, 유연하고 민첩한 적응과 심지 굳은 진중함을 요구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을 제안한다. 슈밥의 말 그대로 ‘이번은 다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