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전국 공보의 선생님들 응원합니다”

[ 특별기획 ] 공중보건의 동행 취재<끝>⑤김영준 공보의(대공협 회장 )


치협 공공·군무위 위원 활동 등
대공협 회원 민원 해결에 최우선

“공중보건의 선생님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열악한 분들을 인터뷰해보면 어떨까요?”

김영준 대한공중보건치과의사협의회장이 한 이 말이 ‘공보의 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지난 7월부터 4명의 공보의를 만나 인터뷰했다. 대청도, 강원도 고성군, 추자도, 질병관리본부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들이다. 공보의 기획 마지막 순서로 이 기획의 발안자인 김영준 회장을 지난 1일 청주시 흥덕보건소별관에서 만났다.

지난 2015년 연세치대를 졸업한 김 회장은 올해 공보의 생활 3년차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청주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곳 보건소 생활은 ‘비교적 무난하다는’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공협 회장 일로 분주할 때가 많다. 회장을 맡은 지 어느덧 8개월째에 접어든 그의 소회는 이렇다.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공보의 선생님들의 제각기 다른 사정과 불합리한 처우를 접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만약 한 지역에서 제 일만 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야 할 텐데’라는 책임감이 늘 따라다녔습니다(웃음).”


# 공보의 관사 제공 문제 해결 노력

그가 대공협 회장을 맡고 난 직후인 지난 2월에는 조금 어려운 상황도 겪었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사무관과 소통이 잘 안 되면서 빚어진 문제 때문이었다. 공중보건의제도는 ‘운영지침’을 토대로 운영되는데, 새로 온 사무관이 대공협 대표단과 아무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운영지침을 개정한 것이다. 

“새로 온 사무관이 ‘운영지침’을 임의로 개정한 후 통보해왔어요. 저로선 사무관 한 명이 전국 보건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운영지침을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불합리해 보였죠. 2월 말께 8시간가량 우리 대표단과 사무관이 회의한 끝에 어느 정도 타협을 본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임기 동안 ‘운영지침’에 따른 대공협 회원들의 민원 해결을 위해 힘쓸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는 일부 공보의들의 ‘관사’ 문제이다. 운영지침에 ‘관사’에 대한 사항이 명시돼 있지 않아 일부 지자체에서 공보의들에게 관사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운영지침에 관사에 대한 부분이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보니, 관사를 안 주는 지역이 있어요. 월급을 받으니까 지낼 곳을 알아서 구하라는 것이죠. 제 임기 내에 이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볼링 배우러 목포까지 왕복 100Km”

김 회장이 처음 공보의 생활을 시작한 곳은 전라남도 진도보건소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듬해 그는 이곳에 배정받았다. 진도보건소에서의 생활은 여러 면에서 녹록지 않았다.

“처음 공보의 생활 시작할 때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있었어요. 제가 제비뽑기에서 39명 중 38번을 뽑았는데, 그 숫자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거죠. 그래서 비슷한 심정이던 의과, 한의과 선생님들과 술로 이런 마음을 달랠 때가 많았습니다(웃음).”

진도보건소에서 서울 본가까지는 차로 5시간 30분가량 소요됐다. 그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본가에 갔다. 더구나 진도에선 특별히 할 게 없었다. 그는 볼링을 배우기 위해 왕복 100Km를 달려 목포까지 나가야 했다. “진도에선 일과 이후에 특별히 할 게 없었어요. 뭔가 하려면 목포까지는 나가야 했는데, 볼링을 배우러 목포까지 왕복 100Km를 달리곤 했습니다.” 

그뿐 아니었다.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오전 시간에는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하루 평균 15명, 오전에만 1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어요. 오전에는 그야말로 1분도 못 쉬고 계속 진료하다가 오후 돼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 “회장 맡으며 시야 넓어지고 성장”

그는 그동안의 공보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꽤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가 대공협 부회장과 회장을 맡으며 보낸 시간이 값졌다는 생각이다. “공보의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대공협 부회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시야도 넓어지고 여러 면에서 많이 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은 내년 4월 공보의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다. 그는 전역 후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전역한 이후에는 아무래도 보편적인 진로를 따라갈 것 같아요. 봉직의 생활을 하다가 개원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가겠죠? 지금 치협 공공·군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데, 앞으로도 치협 일을 계속 돕고 싶어요. 특히 내년 회장단이 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그는 끝으로 ‘공보의 기획’ 발안자로서 전국의 공보의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그동안 기사로 다뤄진 분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공보의 선생님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을 응원하고 싶고, 이분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