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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하지 않아도 좋아

Relay Essay 제2267번째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리면, 가장 먼저 라디오를 켠다. 그 안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사연들로 가득하다.

아침 일찍 도매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와 생선을 사 오는 식당 주인, 고소한 향이 솔솔 나는 빵을 구워내는 제빵사,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신입사원.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각자의 희망과 작은 다짐들로 아침이 시작된다.

나는 거의 10년 간 텔레비전 없이 지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하게 되었다. 그 대신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듣기 시작하던 라디오가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진행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같은 반 친한 친구가 사연을 보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능 파이팅 이런 내용이지 않았을까. 그 때 친한 친구들의 별명을 쭉 써서 보냈는데, 어쩌다보니 별명이 죄다 동물 이름이었다. 그걸 읽은 DJ가 ‘여긴 동물의 왕국이네요’라고 한 말을 두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키득키득하며 즐거워했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나마 천천히 변하는 것이 라디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요즘은 라디오도 많이 변했다. 이제 라디오 DJ들은 더 이상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서함 493호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문자나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내는 세상이다. 손글씨로 꾹꾹 써내려간 편지는 예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는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가끔 보내기도 한다. 전송을 하자마자 라디오에서 내 사연이 흘러나와 기분 좋게 깜짝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현대 문명의 이기로 소통과 참여의 방법이 이렇게 다양해졌다는 것이,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누구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보다 저 멀리 휴대폰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더 중요한 것만 같다. 그런 광경을 보면 씁쓸해진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 더 스마트한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차가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럴 때면 조금은 덜 스마트한 세상이 그리워진다.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나눌 수 있다면, 사람 냄새가 나지 않을까. 사람 냄새가 그리워 오늘도 라디오를 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