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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반지(The One Ring)

오지연의 Dental In-n-Out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는 詩 구절 그대로, 퇴근 무렵이 되자 함박눈이 쏟아졌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서 집으로 간다. 다육이 화분 마냥 운전석 옆에 꽂혀 있는 커피 잔에서 피어 오른 향이 좁은 차 안을 금세 판타지의 세계로 만든다. 원두커피 봉지를 넣어 일단 책들에게 킬리만자로에 온 듯 황홀함을 선사한 뒤 그 가방을 꽃 핀 화분처럼 벨트 채워 조수석에 앉히고 봉천동 고개를 넘는다던 황동규 시인 따라 하기다. 고마운 분이다.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마다 오랫동안 전해오던 사소함으로 어릴 적부터 요즘까지 쭉 곁을 지켜준 그 빛나는 詩들… 거북이 걸음인 차창 밖으로 백화점의 찬란한 전등장식이 보인다.

동굴에 살던 石器時代부터 우리는 불빛을 좋아했다고 한다. 밤이면 이리나 늑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던 기억과, 그 불 옆엔 종종 스스로와 듣는 이 모두에게 두려움과 걱정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이야기꾼이 있곤 해서일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교수 J.R.R.톨킨 역시 매일 밤 난롯가에서 자신의 세 아이들에게 땅 속 공동(중간계)에 사는 호빗이란 반인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수많은 친구들을 잃으며 세계지배의 사악한 욕망이 세상을 얼마나 참혹하게 하는가를 목도했던 톨킨의 이야기는 막강한 힘을 지닌 ‘절대 반지’를 사악한 사우론을 피해 적진 깊숙한 곳의 운명의 산 용암속에 던져 넣으려는 호빗 프로도를 위시한 반지 원정대의 모험담이었다.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화 한 ‘반지의 제왕’ 3편‘왕의 귀환’이 판타지물 로는 최초로 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자, 판타지는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을 해명하는 도구로 격상되었다. 보물을 찾으러 혹은 공주를 구하러 가는 흔해빠진 모험담과는 달리 우연히 지니게 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반지를 ‘버리기 위한’ 험난한 여정인데다가, 승리의 환호가 아닌 우수에 찬 결말로 끝나는 ‘반지의 제왕’으로 톨킨은 무엇을 잊으려 혹은 해명하려 했을까.

절대반지란 여러 종족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반지들을 압도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현자 간달프도 요정족 여인 갈라드리엘도 그 소유욕에 지배당할까 두려워 한사코 지니려 하지 않았던 골치 아픈 물건이었다. 사악한 세력의 수중에 그 반지가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목적 하나로 여러 종족과 함께 원정대를 꾸려 운명의 산에 가져다 버리려는 프로도일행은 반지를 빼앗으려 길목마다 막아서는 사우론 일파와 여러 협곡과 평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했고,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부었을 그 오랜 동안 난장이족의 김리는 요정족 갈라드리엘과의 금지된 사랑에 내내 아파했다. 어쩌면 절대반지가 없는 곳이어야 궁극의 세계이고, 그 여정에서 겪는 일들이야말로 본질이라는 것일까.

구강보건전담부서의 설립이나 1인 1개소 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苦待하며 한편으론 우리의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선수의 급성 치수염 치료를 위해 협회가 이동치과병원 버스를 국가대표선수촌에 급파해 한 시간가량의 진료로 상황을 해결한 것은 ‘器具와 치과의사가 함께 환자 곁에 있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치과진료의 특성을 실감케 해 1인 1개소법의 당위성을 일반국민에게 잘 보여준 사례라 여겨진다. 탈법적 운영을 하는 치과들에 대해 지역 개원가가 다각도로 자정노력을 하는 모습들 역시 비록 미약하고 제한적인 듯 보일지라도 대다수 회원이 고통 받는 현장의 목소리와 법전 해석 사이에서 때로 오락가락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법당국에게 약간의 밸런스를 기대할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방랑하는 모든 이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듯이.

가혹한 운명에 지쳐 낙담하는 호빗 프로도에게 현자 간달프는 “살면서 힘든 시대를 목격하게 되는 건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란다. 주어진 시간으로 무얼 해야 하는가가 우리가 결정할 일이겠지”라고 말했다. 자, 이제, 집에 돌아왔다.(Well, I’m back.)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