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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지 오늘도 고민합니다

Relay Essay 제2283번째

봄, 꽃피는 소리. 여름, 구름에 비 맺히는 소리. 가을, 잎에 단풍 드는 소리. 겨울, 눈들이 낙하하며 수던거리는 소리도 좋지만 식구들이 덜커덕 하고 문 열며 귀가하는 소리도 참 좋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나면 이제 편히 숙면을 하게 됩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쉬어가는 집입니다. 딸아이 친구들 놀러와 방에서 수다 떨고, 큰 아들 친구들 방에서 게임하고, 막내아들 친구들 밤새 토하려 화장실 왔다 갔다 하면 이게 사람 사는 소리인 듯해 흐뭇하게 미소 짓곤 하였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당연히 자기들 방에 없지만 자꾸 애들 방을 쳐다보고 가끔은 그 방에 들어가 아이들 냄새를 맡아보곤 합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왠지 낯섭니다. 책이 떨어져 있고 갈아입은 옷이 흐트러진 채 있어야 정상인데 너무 깨끗한 방에서 그리움이 솟아오릅니다.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고 나면 하루하루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스레 느껴집니다. 어떤 이는 진료실에서 홀로 무언가를 정리하다 갑작스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고 어떤 이는 등반하다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합니다. 두 분다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어 아무도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을 할지는 몰랐겠지요. 삶이 이렇게 황망할 줄 알았다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내다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어떤 변화된 삶을 살아갈까요.

십여 년이 지나면 아이들이 결혼해 손자를 데려와 우리 집이 다시 복잡 해 질 겁니다. 그때도 아랫 층에 귀 밝은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방음 잘되는 이어폰 하나 사드려야겠습니다.

오늘도 치과의사 단톡방에는 직원문제로, 임플란트 실패로, 틀니불편으로 인한 환불문제로 또 치과계의 불편한 현안으로 고심하는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행복한 치과의사는 가뭄에 콩나듯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생살이가 어쩌면 고행입니다.

아침에 뜨는 해는 구름과 바람과 습도에 따라 매번 다릅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변화무쌍 속에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지 고민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 저승에 가 내 앞에 있는 문을 덜커덕 열고 들어갔을 때 거기엔 무엇이 펼쳐져 있을까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가 죽으면 이충규 (1962-?) 이렇게 숫자가 적혀지겠지요. “?” 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보람 있는 충실함으로 채워야지 덧없이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이별도 필연이고 떠남도 숙명입니다. 기억되는 건 남기고 간 흔적입니다.

봄비 속에서 새싹 돋아나는 소리가 싱그럽습니다.

이충규
성심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