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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임철중 칼럼

캘리포니아에 금이 쏟아져 골드러시가 일어나자(1949), 대륙횡단철도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우선 자유 주(노예해방 찬성)를 통과하는 프로젝트가 연방정부에 제출된다.  다음 해 링컨의 승인을 얻어내지만 남북전쟁으로 흑인노동자 투입의 길이 막히고, 대안으로 광둥의 중국인 노동자 2만 명을 데려온다(1865, Charles Crocker).

 중국인 쿨리(苦力) 1200 명이 목숨을 잃은 6년간의 난공사가 끝나자, 갈 곳 없는 실직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다시 많은 사상자를 냈고(1871), 정부는 할 수없이 별로 쓸모없는 변두리 땅을 제공한다.  그들은 굶어도 내 관(棺)값만은 가슴에 품고 죽는다는 특유의 ‘인내’로, 이 박토 위에 세계제일의(아시아 제외) 차이나타운을 조성하였고, 금문교 공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1933-37).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 리노에 닿기 직전에 만나는 레이크 타호는, 여전히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한 낚시인들의 로망이다.  인디언 지명으로 알았던 그 이름이 중국어 큰 호수(大湖; Tahoe)였다니...

 인구가 늘면서 이탈리아 음식점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롬바르드 거리가 생겨나고 땅값도 올라, 샌프란시스코 인구의 1/8에 해당하는 10만 명 화교(華僑)중에 거부가 많다고 한다.  북가주에 15만이라는 우리 교포가 왜 이런 코리아타운을 만들지 못 하는가, 속 썩이지 말자.  화교들은 남북전쟁시절부터 말 그대로 피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노력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도 업무강도가 높은 공공 버스기사는 대부분 중국계라고 한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롬바르드 가를 지나 칼 헨리 꽃길을 향한 오르막에서, 가이드가 갑자기 다녀올 일이 생겼다.  마침 길가에 아담한 미술대학(SF Art Institute)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보기로 했다.  3 x 6m 크기의 건물 벽 두 곳에 이제 막 전시가 끝난 교수들 작품 벽화가 남아 있다.  그라피티 벽화는 그저 그런데, 한눈에도 톈안먼 사태(天安門 1989. 6. 4)의 포스터 같은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맨몸으로 탱크 앞에 서서‘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에 맞선다)’의 4자성어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청년의 패러디다.  왼쪽에 사마귀 오른쪽에 탱크를 배치한 가운데, ‘당비당차(螳臂擋車; 사마귀 팔뚝으로 탱크를 멈춘다)’라는 붉고 굵은 네 글자가 선명하다.  작가 이름이나 이 대학 교수·학생 중에 화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나, 정치색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게 길들여진 ‘평민’의 그림 한 폭에서, 무거운 메시지와 말없는 응원의 저력을 읽는다.  탱크사태 30주년을 맞은 홍콩시민들의 시위는, 이런 저력에 힘입어, 사실상 중국이 요구한 범인인도 법(송환 법)을 철회시킨 것이다.
 옥상에 올라서니 발아래는 알카트라즈 크루즈가 떠나는 피어(pier) 33이요, 건너편에는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등대가 보이는 절경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집행부는 헌재 앞에 ‘1인 1개소 법 사수’의 피켓을 들고 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릴레이 일인시위’를 장장 1427일 간 이어왔다.  일인 시위가 과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회원도 많았고, 실제로 헌법재판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장장 4년여에 걸친 줄기차고 피땀 어린 인내와 노력이다.  결국 헌재는 우리 손을 들어주었다.  의료기관의 중복운영은, 운영자체를 위한 과잉 이윤추구와 의료인의 파행적인 종속으로, 국민건강을 해칠 뿐이라는 주장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은 ‘판단’일 뿐, 교묘하게 그물을 빠져나가려는 피라미들을 막아낼 후속 법 제정에 협회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회원들의 적극적 성원이 절실한 때다.  ‘중국계 이민정지 법(1881)’같은 핍박 속에서도 오늘의 차이나타운을 지키고 일궈낸 저들의 저력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