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DA와 FDI의 세계치과대회(2019년 9월 5~7일)는 1996년 올랜도(Orlando) 총회 이후 23년 만의 공동 개최였다. 개원의 세계총회에 처음 참석한 필자에게는 느끼고 깨달은 것이 많았다. FDI는 넉넉한 체격에 열심히 일한 캐스린 켈(Kathryn Kell)에 이어 신임 게르하르트 씨버거(Gerhard Seeberger) 회장이 취임하고, 새로운 이사 일부를 뽑는 총회였다. 후보 5~7명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실시간 전자투표로 최저득표자를 한 명씩 제외해 가는 Elimination 방식은 배울 점이 많았다. 대한여자치과의사회장을 역임한 이지나 선생이 과감히 도전하여, FDI에 여자치과 부서를 신설하고 개원(Practice)위원회 이사에 당선된 일은 얼마 전 박영국 이사의 당선과 함께 경하할 일이다. 제프리 콜(Jeffrey Cole) ADA 회장은 개막연설에서 미국 치과계가 당면한 현실과 이에 대응할 협회의 정책방향을 시사하고 있었다. 현 시점을 체제가 파괴되는 ‘혼란(Disruption)’시기로 보고 그 징후로, 환자는 진료의 편의성과 부담비용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의사에 대한 충성심(Loyalty)은 사라지고, 치과의사는
치과의사 인생 반 백 년에 해외 학술모임에 꽤 나갔지만, 모두 교정학 일변도요, 일반 개원의의 국제대회는 경제적·시간적인 낭비라고 생각해왔다. 김철수 협회장과 후배 김명수 전 의장의 권유로 FDI 샌프란시스코 총회에 게스트로 다녀와서, 그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은 얘기는 뒤로 미룬다. 다만 20년 만에 미국치과의사협회(ADA)와 공동 개최한 이번 총회가 소문만큼 알차고 풍성한 느낌이었다는 점만 밝혀둔다. 일정이 끝난 뒤, 워싱턴에 계신 형님(서울의대 53학번, 정형외과 은퇴) 내외분을 뵈었다. 중국집에서 식사 도중에 치과진료 얘기가 나왔는데, 형은 방문 첫날 보철(임플란트 4본)을 덜컥(?) 약정하고 왔다고 비난조요, 형수는 전문의의 권유를 거절할 수 있느냐며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 주차장 모퉁이 벽돌집 2층에 붙어있던, 미국에서는 낯선 ‘UD 치과’ 간판이 기억난다. “결정은 신중해야지.”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이제 헌재 판결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사무장·네트워크 치과 문제는 협회와 회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입혔던가? 성공의 뒤안길에는 늘 그늘이 있고, 햇살이 강렬할수
스탠퍼드 대학 입구 넓은 잔디밭을 지나, 나지막한 교회와 대학건물을 마주하면, 마치 개척시대 장원(莊園)에 들어선 느낌이다. 최초로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한 철도왕이자 전 상원의원인 스탠퍼드(Leland Stanford)가 거대한 농장 Palo Alto(큰 나무)에 세운 대학으로, 캠퍼스가 미국에서 둘째로 넓다고 한다(1885, 개교는 1891년). 당시 정부는 철도회사에 철도 양편으로 각 10m씩의 토지를 주어, 사냥터와 농토를 빼앗긴 인디언·농민들과 철도회사 간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남북전쟁 후 수십만 병사가 돌아오자, 거국적인 “Go West, young men!” 캠페인이 벌어지고,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 빈번해진 인디언 습격을 제압하여 치안의 확립을 지시한다. 그렇게 피 묻은 돈으로, 동부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 명문대를 세우자는 열망은 열매를 맺어, 오늘날 세계 랭킹 5위안에 들어가는 연구중심 사립대학으로 성장한 것이다. 왼편에는 로댕의 야외 조각상이 서 있고, 정면 첫 건물은 어렵게 얻었다가 너무 일찍 잃은 아들 릴랜드 주니어에게 헌사 된 교회다. 21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후버 대통령 및 페리 국방과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배출하였다. 터
캘리포니아에 금이 쏟아져 골드러시가 일어나자(1949), 대륙횡단철도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우선 자유 주(노예해방 찬성)를 통과하는 프로젝트가 연방정부에 제출된다. 다음 해 링컨의 승인을 얻어내지만 남북전쟁으로 흑인노동자 투입의 길이 막히고, 대안으로 광둥의 중국인 노동자 2만 명을 데려온다(1865, Charles Crocker). 중국인 쿨리(苦力) 1200 명이 목숨을 잃은 6년간의 난공사가 끝나자, 갈 곳 없는 실직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다시 많은 사상자를 냈고(1871), 정부는 할 수없이 별로 쓸모없는 변두리 땅을 제공한다. 그들은 굶어도 내 관(棺)값만은 가슴에 품고 죽는다는 특유의 ‘인내’로, 이 박토 위에 세계제일의(아시아 제외) 차이나타운을 조성하였고, 금문교 공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1933-37).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 리노에 닿기 직전에 만나는 레이크 타호는, 여전히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한 낚시인들의 로망이다. 인디언 지명으로 알았던 그 이름이 중국어 큰 호수(大湖; Tahoe)였다니... 인구가 늘면서 이탈리아 음식점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롬바르드 거리가 생겨나고 땅값도 올라, 샌프란시스코 인구의 1/8에 해당하는 10만 명 화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