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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때 LA갈비가 그토록 먹고 싶어졌을까

Relay Essay 제2432번째

모든 요리가 라면 끓이는 것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요리하는 일은 번거롭다. 새로운 요리법을 확인하고 음식 재료를 사다가 손질해 요리해 음식을 먹는 것까진 괜찮은데, 싱크대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설거짓거리와 또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수 끓여 먹는 라면보다는 남이 끓여준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채소를 즐겨 먹는다. 싱싱한 상추쌈과 고기 중에 하나를 골라 먹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상추를 고를 것이다. 그래서 명절 밥상에 LA갈비가 올라오면 한두 점 집어먹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갈비를 집에서 직접 요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출근길에 들었던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퇴근 후 타이어전문점에 들렀다. 군산까지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데 뒷바퀴 마모가 심해 타이어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작은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추석엔 고향에 내려오지 말고 집에서 그냥 쉬어.”


“안 내려가면 고생 안 하고 나야 좋긴 한데… 알았어요. 형. 어머니하고 통화해볼게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설 연휴 때는 우리 가족만 베트남 여행 간다고 명절을 함께 하지 못했던 터라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께 전화드렸더니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자식이 고향에 내려오면 불효자라는 얘길 하시면서 애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편히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밀리는 차 안에서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연휴를 보내겠구나 싶어 좋았는데, 내려오지 말라니까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변덕일까.

 

연휴가 끝나고 몸이 일상에 적응하는 데는 그 쉰 날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달팽이보다 느린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횡단보도 앞으로 걸어가는데 횡단보도를 건너온 할머니 세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 명절 때 LA갈비 20만 원어치 사다가 배 터지게 실컷 먹었어.”라며 할머니 한 분이 말하자 옆에 계신 친구분들은 “잘했네. 잘했어. 나이 들수록 고기를 잘 챙겨 먹어야 해.”라며 맞장구쳐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 터지게’, ‘실컷’이라는 두 단어가 마음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월요일 아침 징글징글하게 복닥거리는 마음을 향해 ‘지금 이곳은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며 혼자서 선문답을 던지다 보니 하루가 어찌어찌 흘러갔다. 퇴근길에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명절 때 큰누나가 육개장이며 잡채, 간장게장, 게장무침을 담가왔고 집에서 LA갈비도 굽고, 떡도 하고, 작은형네랑 외손자가 해경으로 근무하는 변산에 드라이브 다녀오는 길에 회도 떠 와서 맛있게 드셨다는 얘기를 한참 이야기하셨다. 긴 이야기 끝에는 “퇴근길이라 우리 아들 배고플 텐데, 엄마가 음식 얘기만 늘어놔서 미안하네.”라며 웃으셨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어머니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우리 막내아들이 내려와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으셨겠구나 싶어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LA갈비 얘길 듣고 나니, 이번 주말은 세상이 무너져도 갈비를 꼭 해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LA갈비쯤은 식은 죽 갓 둘러 먹기보다 쉬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처럼 처음 LA갈비를 요리하는 분들을 위해 요리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적어본다.

 

마트에 들러 미국산 냉동 LA갈비를 사 왔다. LA갈비 1㎏을 해동시킨 후 흐르는 물에 씻어 뼛가루를 없애고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1시간 정도 담가두었다. 이제 LA갈비를 재울 양념을 준비할 차례다. 믹싱 볼에 종이컵 기준으로 진간장 1컵((200g), 황설탕 1/2컵(80g: 간장과 설탕의 비율은 2:1인데, 설탕을 줄이고 물엿이나 아카시아 꿀을 추가해주면 단맛이 강해진다), 맛술 1/2컵(100g: 미림이나 미향), 간마늘 1/4컵(40g), 간생강 1/2큰술(8g), 대파 1컵(80g), 참기름 2큰술(15g), 정수물 3컵(635㎖, 540g)을 넣고 후춧가루(black pepper, 약간)와 배 1개를 갈아 넣는다. 설탕이나 물엿이 잘 섞이도록 저어준 후에 밀폐통에 차곡차곡 LA갈비를 깔고 양념장을 붓기를 반복해서 냉장고에 넣어 하루 이상 양념에 재운다. 2~3시간 이후에 곧바로 드시려면 양념을 간이 좀 세게 해도 좋다. 갈비를 굽는 요령은 양념에 재어놓아서 프라이팬에 굽게 되면 고기가 금세 타버리므로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졸이듯이 갈비 사이에 기름을 녹여서 노릇노릇하게 익혀주는 것이라고 한다.

 

추석 명절날 시골집 아침 풍경을 떠올려본다. 주방에서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나면, 거실에서 온 가족이 모여 간단한 추도예배로 드렸을 것이다. 그 시간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작은누나를 추모하는 시간이며 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애틋한 시간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건강한 것에 대한 감사의 시간이다. 가족예배가 끝나고 너른 통유리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거실로 옮겨지는 직교자 상위로 갓 지은 밥과 육개장, 잡채와 LA갈비에서 햇살 담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겠지.

 

어느 해인가, 여유롭고 포근했던 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18시간을 밤새 운전해서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잔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왜 악착같이 고향 집에 내려가려고 했을까? 나는 왜 갑자기 LA갈비가 그토록 먹고 싶어졌을까? 돌아보니 그건 가족의 온기를 가까이서 느끼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돈을 잘 벌어야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내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을 만나면 비로소 두려웠던 삶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두렵고 버거운 세상을 버텨나갈 힘을 얻기 위해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소환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