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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통이다 vs 삶에 정답이 없다(인생은 고통이다IV)

스펙트럼

2년 전부터 올해 초까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주제로 글을 많이 써왔었습니다. 그 고통은 주로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불안감 또는 이루어내는 과정에 대한 힘듦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습니다. 제가 칼럼으로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올해 봄 쯤에 우울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욕망을 추구하므로 인생은 고통이다를 인정했으므로, 당연히 분투하며 노력을 해야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좌절감이 우울감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우울감에서 저를 건져온 말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인 ‘삶에 정답이 없다’이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선생님은 유튜브에서 본래 인간은 형편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윤리적이거나 근면하거나 항상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고 게으르며 늘 선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고 사회적으로 연결된 시스템들이 우리의 의지를 작동시켜서 힘든 일들을 하고 성과를 내게 만듭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고도로 연결된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라는 욕망은 대체로 세속적인 경우가 많고, 남들도 다 관심 있는 좋다고 평가받는 것이지 남들의 관심이 없고 나만 고유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욕망인 경우는 드뭅니다. 주체적으로 나 자신이 욕망해서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규정해놓은 것을 나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고통을 받을 때, 과연 이 욕망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는 획일성이 매우 강하고 다양성보다는 가치의 서열을 매겨 우열로 비교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더 좋고 나쁨은 오직 나 자신에 의해서만 판단해서 규정을 할 뿐, 타인이나 사회가 이념에서 특정한 것이 더 좋다고 주입식으로 주어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르게 추구하는 가치나 욕망은 우열이 아닌 상황과 맥락에 따른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나 자신한테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번 칼럼인 ‘우연과 필연’에서 운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에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게 작용하여 세속적으로 더 우월하게 보이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반면 비세속적인 정반대의 가치나 게으름과 나태와 같은 비생산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 안에서도 인생의 시절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글을 여러 시일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오늘 읽은 (이것도 원고 완료 시점에서는 며칠 전 이었습니다) 이원율 기자의 프랜시스 베이컨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베이컨 역시 동성애자로 문란하게 살면서 도박장을 수시로 드나들고 인간의 고통에 천착하면서 비주류적으로 살아왔지만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남기면서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까지는 ‘인생은 고통이다’가 저에게 삶의 태도와 같은 중요한 문구였었다면, 이제는 ‘삶엔 정답이 없다’라는 말을 더 자주 되뇌이거나 주변 사람들에 얘기하곤 합니다. 요즘은 마음이 평안한 편이지만 어떤 날은 연구실의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것이 괴롭고, 앞으로 다가올 마감들과 미뤄놓은 것들, 그리고 반드시 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일들이 떠올라서 고통스러울 때도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는 책상에 앉아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일단 연구실을 나와서 집 근처로 이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에 버스나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싣고 되뇌이는 생각은 삶에 정답이 없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이 최소 20대 중후반일 것이고, 그 시절부터의 인생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삶의 부분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조던 피터슨도 성인이 되어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모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대하고 힘든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삶이란 위대하고 힘든 일을 수행하고 있는 분들에게 제 글이 이 고통스러우면서 정답이 없는 삶에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