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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잡는 총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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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ries “silver-fluoride bullet”, 어떤 논문 제목의 일부입니다. 대체 누가, 어떤 자신감으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충치 잡는 총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까요? 600회가 넘게 인용된 이 논문은 Silver Diamine Fluoride(SDF)라는 생소한 재료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재료가 포함된 제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인되어 시판된 202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아동 및 청소년과 장애인의 증례에 꾸준히 적용해온 제 경험을 조심스럽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SDF의 역사를 silver nitrate의 역사까지로 연장하여 보는 이들은 일본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치아를 검게 칠하는 흑치(黑齒) 풍습까지를 SDF의 긴 역사라 설명하지만, 현대의 국가 체계에서 정부기관으로부터 승인받은 제품이 사용된 기록을 공식적이라 본다면 1970년대 일본에서 사용된 제품이 그 첫 출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 호주와 브라질을 비롯한 일부 국가로 그 사용이 확장되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까지 그 사용이 활발하였지만, 북미국가에서 SDF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로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미국과 같은 거대국가에서 SDF의 사용이 늦어진 연유를 알 수는 없지만,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 FDA가 2014년에 SDF가 포함된 제품을 공식 승인하고 고작 2년이 흐른 2016년에 SDF를 “breakthrough therapy”라 지정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배경에는 SDF의 놀라운 효과, 즉 우식 정지(arrest) 기능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대체 일반적으로 말하는 불소바니시에 비해 무슨 차이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치켜세우는지, 우식 예방이 아니라 우식 정지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이유가 있는지, 그 기전에 의구심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불소(F) 및 은(Ag) 이온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닥 와닿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저 불소나 은 이온 농도를 높인다고 우식이 정지될 문제였다면 다른 제품이 벌써 시장을 선점했을 터입니다. 역시, 직접 사용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SDF 직접 사용의 또 다른 계기는 미국치과의사협회에서 발표한, 우식병소의 비수복적 치료를 위한 근거기반 임상진료지침(Evidence-based clinical practice guideline on nonrestorative treatments for carious lesions)이었습니다. 제가 흔히 접하는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의 우식와동에 가장 첫 번째로 SDF 적용을 고려하라는 지침의 권고에 따라 적절한 증례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높은 확률로 우식이 정지되는 경과를 관찰하고 난 뒤 증례의 범위를 고령자 및 장애인의 치근우식과 이차우식으로 확대하여 역시 많은 경우 우식의 정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치아수복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은 국내 현실에서 SDF의 활용이 크게 확산될 거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협조도가 낮은 환자, 특히 아동 및 장애인의 경우 매우 높은 효용이 있다는 점, 치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설 입소자 등에 방문하여 도포할 수 있다는 확장성 등을 고려할 때 일부 치과의료 종사자들에게나마 SDF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SDF라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게 큰 용기를 주셨던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병원 소아치과의 박호원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SDF의 국내 최초 승인 소식을 전해드리자, 특유의 미소를 지으시곤 짙은 사투리로 설명을 이어가시며 적극 사용을 권장해주셨던 모습이 제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 투병 끝에 작고하시기까지 저를 포함한 많은 제자들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원고의 짧은 사설이나마 추모와 감사를 위해 할애함을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