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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꿈(염라대왕)

시론

흥미삼아 필자의 비공개 산문집(단편소설) ‘백수의 꿈’ 중 한 편을 소개한다. 어렸을 때 본 만화의 한 장면을 토대로 엮었다. 요즘 들어 본의 아니게 다양한 연령층의 백수가 양산되고 있다. 힘든 일은 꺼리게 되어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되고 각종 실직 수당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청년백수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 우물을 파는 우리 시대의 우직함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백수... 종일 빈둥거리는 게 일과, 만사가 귀찮아 일 안 해도 밥 해 주는 엄마께 미안해하면서도 늘어만 가는 뻔치, 평생 백수의 삶, 꿈도 희망도 없는 되는 대로의 삶. 어느 날 낮잠 자다가 꿈을 꾸었어. 저 멀리 담 벽 끝에 조그만 구멍이 보이는 거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일명 ‘개구멍’이라고도 하지. 들어가서 좀 지나다보니 나무그늘 아래 희미하게 두 노인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어. 가까이 다가가니 옥황상제와 염라대왕께서 세월아 네월아 바둑만 두는 거야. 재미있어서 옆에서 훈수 두니까 옳거니 하며 좋아하시는 거야. 옥황상제께서 바둑을 두다가 돌아보며, “여긴 왜 왔어?” “심심하고 무료해서 재미꺼리 없나 해서요.” 품에서 거울을 꺼내 보여주며 껄껄 웃으시며, “훈수도 해 줬으니 10년 후 네 모습 봐 주겠다.”

 

30대 후반, 결혼은 했지만 정수기 외판원 되어 판매 부진으로 실적을 위해 엄마께 도와 달라고 생떼 쓰는 모습. 할 일 없이 바둑판 기웃기웃, 장기판 훈수 들고, 낚시꾼 고기 구경, 남 위해 한 일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 할 줄 아는 건 시간 죽이기 뿐. 너무나 실망스러워 다시 10년 후를 보여 달라니까 한 번 보면 되돌아 올 수 없다고 경고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원해서 본 40대 후반, 마누라한테 잔소리 듣고 혼나고 있는 초라한 모습. 주식투자에 폭망하여 한숨 쉬는 모습, 즉석복권 긁는 모습, 로또복권으로 헛꿈 꾸는 모습. 욕 나오고 무능한 자신을 보며 분하고 억울해서 또 10년 후가 궁금해서 제발 보여 달라고 졸랐어. 후회할 거라면서 돌아가라 했지만 애걸복걸하며 매달려.

 

다시 10년 후 50대 후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이른 새벽 인력시장, 나 좀 데려가 달라며 울부짖는 하루살이 인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막노동 뿐, 벽돌 나르다 넘어지고, 철근 자르다 손 다치고, 돈 벌려다 몸 다치고, 돈만 까먹는 도움 안 되는 백수 중의 상 백수.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마누라. 아! 오늘도 허탕이로구나. 한심한 내 인생. 이왕지사 이판사판.

 

60대 후반, 평생 고생하고 삶에 찌들려 허리디스크, 신경통으로 지팡이 짚고 절뚝거리는 불쌍한 백발노인, 10년은 더 늙어 보였어. 한심한 내가 싫어 마누라는 곁을 떠난 지 오래. 무능한 아빠라며 자식들도 연락 끊고, 의지할 곳 없는 떠돌이 노숙자 신세. 꿈도 희망도 없는 내 인생, 왜 이리 제대로 되는 게 없나? 10년 더 보자고 애원했어.

 

70대 후반, 무료노인복지시설에서 밥만 축내고 이따금 괴성 지르며 삶의 의미도 없이, 거동 못하는 천대 받는 신세. 아~ 한심한 내 인생이여...

 

10년만 더 보자고 사정했지만 더 볼 게 없으니 그냥 가라는 거야. “어딜 가야 하나요?” “넌 다 살았으니 저 옆 염라대왕 앞으로 가!”라고 하는 거야. “옳게 살아 보지도 못했는데요?” “멍청한 백수의 삶이 너의 삶이야.”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제발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싹싹 빌며 목숨을 구걸했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겠다고 애원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어. 염라대왕께서 하시는 말씀, “넌 이승에서 한 일이 별로 없구나. 막노동한 게 네 일이니 여기서 평생 땅 파고 삽질이나 하거라!” 하며 지팡이로 머리를 내리치는 거야. 이승에서 허구한 날 놀며 빈둥거리기만 하고 남을 위해 한 일 전혀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 복창하며 쥐어진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는데, 요령 피운다며 사정없이 채찍 맞으며 꿈에서 깨어났어. 얼마나 아팠던지 엉덩이를 움켜쥐었어. 잠 깨우느라 내 곁에서 “아이구 이 인간아 언제 철들래?” 하며 엉덩이를 찰싹찰싹 치는 엄마를 와락 안으며 “아~ 꿈이어서 감사합니다.” 영문 모르는 엄마는 어리둥절. “열심히 노력해서 직장 구하고 결혼해서 효도할게요.” 그길로 한심한 나를 깨닫고 양봉업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전수받아 몇 년의 노력 끝에 부모님께 손 안 벌리며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 해마다 아카시아꽃 피는 봄이 되면 내 마음을 녹이는 신선한 봄기운과 함께 향긋한 아카시아 향을 가득 담은 꿀을 따고 나를 찾아주는 고객에게 감사드리며, 큰돈은 아니지만 엄마께 용돈 드릴 수 있는 현재의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어머니 감사합니다. 끝

 

치과진료를 하면서 사명감과 주어진 의무로 견뎌왔지만 인간인 이상 환자의 불만이나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서 오는 회의감이 들은 적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재능을 베풀 수 있는 현재 모습에 감사히 여겨야 한다. 백수가 되어 힘겨운 사회부적응자 되어 갈피 못 잡는 생활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나서 원래대로 되돌아갔으면 하고 후회한다. 치과의사로서의 보장된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어쩔 수 없이 백수로 사는 주위도 돌아보자. 불경기로 인한 취업난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직이나 이른 정년퇴직으로 본의 아닌 백수가 되어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사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매일매일 매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자.

 

 

백수의 꿈(염라대왕)

 

되는 대로의 삶

빈둥거리니 잠이 와

오늘도 꿈꾼다 이룰 수 없는 헛꿈

정신 차리라는 엄마말씀

 

오늘 꿈 염라대왕

어제 꿈 옥황상제

변함없이 뒹굴뒹굴

백수 삶도 익숙하니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남을 위해 한 일 없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아직도 할 일 많다

매순간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