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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거제도와 정시 전형, 능력주의의 결정체

시론

안동 도산서원 앞마당에 길게 뻗은 흰색 고목나무 너머로 호수같이 펼쳐져 있는 낙동강이 보인다. 조용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 속에 섬처럼 솟은 시사단(試士壇)이 있다. 이 시사단은 1792년 정조가 존경하던 퇴계를 추모하기 위하여 특별히 과거시험(도산 별과 陶山別科)을 실시한 것을 기리는 곳이다. 당시 도산 별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1만명의 유생이 도산서원에 몰렸고 7228명이 응시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최종 1등과 2등을 선발하여 초시와 복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과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특별자격을 주었다고 한다.

 

통상 조선시대 과거는 3년에 한번씩 치루어지는데, 크게 네 단계의 시험으로 나뉜다; ① 생원 진사시 (200명 선발), ② 대과 초시 (240명 선발), ③ 대과 복시 (33명 선발), ④ 대과 전시 (33명이 왕 앞에서 시험을 치고 순위를 정함). 마지막 전시에서의 1등이 장원 급제이며 종 6품으로 관직에 등용된다. 당시 조선시대 인구가 730만명 정도였으므로 현재 우리나라 인구 수를 고려하면 가장 첫 단계 시험에 통과하여 생원이나 진사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인서울 의대에 합격한 것과 비슷하다. 복시를 통과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는 것보다 두 배 더 어렵다.

 

도산 별과가 있은지 8년 후, 1800년 한양에서 진행된 과거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의 수가 21만명이라고 한다. 당시 조선 인구가 지금의 1/7 수준이니 요즘으로 보면 140만 명이 서울에 시험치러 온 것과 같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거시험에 참으로 진심이었다. 

 

신라시대에는 혈통을 중시하는 골품제도가 있어서 성골, 진골, 육두품으로 구분되는 귀족이 세습하여 지위를 이어받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세습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중국에서 실시하던 과거제를 도입하였다. 과거제도는 대를 이어가며 핵심 권력을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중요하게 여겨 귀족의 전유물이던 사회적인 지위를 일반 백성에게도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선구적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은 열심히 공부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다. 

 

과거제도는 똑똑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는 장점이 있으나, 유교적 가치관 내의 제도화된 틀안에서 사고해야 하므로 과거 시험에 도움이 안되는 학문은 도외시하게 되었다. 즉, 철저한 능력주의가 기반이 되는 사회로 이행될수록 체제순응적인 엘리트가 점차 상층부를 채우게 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과거준비에 몰두할 수 있는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또한 관직에 오르면 관료간의 파벌을 형성하여 한양의 명문가가 점점 고위 관직을 독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지방 유림 출신 급제자들의 조정 진출이 갈수록 줄었다. 게다가 학문적으로도 경직되고 대내외 정책도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하여 과거제도가 나라의 경쟁력을 저하시켰다. 게다가 부정부패가 더해지면서 나라도 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심지어 과거제도에도 일반전형(한성시), 지역인재전형(향시)이 있었다. 중국의 과거제도를 면밀히 연구해 온 쿄토대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에 의하면, 중국과 조선의 과거 시험에 기본이 되는 사서오경은 총 46만자이며 하루 200자를 끊임없이 외운다면 총 6년이 걸린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지금의 수능 정시 전형보다도 더한 시험 지옥의 최고봉이었다. 지금의 수시 전형의 경우, 정시 전형이 초래할 수 있는 교육 불평등 심화와 공교육 붕괴라는 난제를 풀고자 학교 교육 중심의 정성적 종합평가를 우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수시 선발과정이 입시 비리 논란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때문에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이 수시보다 세 배가 더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정시를 더 선호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입시제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 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공정하려면, 개인의 능력만을 투명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특혜도 물려주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애덤 스위프트의 지적처럼 국영 고아원을 만들어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서 개인의 능력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도록 해야 궁극의 “공정함”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 건설회사 광고처럼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는 지역이 신분이 되며, 사회적, 경제적인 지위와 정보력이 뒷받침되어야 수능에서 고득점을 획득할 수 있다. 능력주의가 최선이라고 믿는 것은 아빠 찬스로 먼저 2루나 3루에서 출발한 선수가 홈으로 들어올 때 그것이 다 자신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정시 전형이 결코 공정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이루어 능력만이 잣대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이는 조선 500년 과거시험의 역사가 다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내 능력뿐 아니라 내 부모로부터 받은 자산, 지식 그리고 운이 지금 나의 직업과 위치에 영향을 미쳤음을 좀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