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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Easy CDE

Relay Essay-제1882번째

며칠 전 신제품 개발 차 네덜란드를 방문하였다. 짧은 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겨우 도착한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도 계속된 회의와 제품 테스트 등 빡빡한 일정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나마 몸과 마음의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네덜란드 파트너들의 집에 초대받아 정성껏 준비된 음식을 맛보면서였다.


최소 70~80년은 되었다는 네덜란드 파트너의 집은 전통을 사랑하고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네덜란드인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왔던 건 저녁식탁에 올라온 김치. 외국여행길에 종종 먹게 되는 무언가 빠진듯한 그런 어설픈 김치가 아니라 한국인 누가 먹어도 인정할만한 수준의 김치를, 그것도 직접 집에서 담갔다며 김치독에서 꺼내어놓는 게 아닌가. 순간 필자는 이미 한국의 문화가 그들에게도 깊이 스며들어있구나, 한국의 음식문화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폐허에서 근대화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근면하고 우수한 민족이니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를 경험한 외국인들은 김치와 같은 음식문화, 그리고 음악 등의 예술 속의 소프트파워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러한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한민족 5,000년 역사상 최근 50년이 가장 융성한 시기라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실제 우리나라는 많은 분야에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에 도달했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발전의 정체와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계론이 대두되기도 한다.


요즘 우리치과계도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미 수준은 세계정상급 수준! 그러나 한국의 다른 산업과 비슷하게 고도성장 후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미 쇠퇴기로 접어든 느낌마저 든다. 병원의 대형화와 빠른 성장 속도, 그리고 임플란트로 대변되는 혁신적인 진료법 위주로의 쏠림 현상 등이 마치 근대 경제발전 시기의 한국산업 성장과 유사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치과도 역시 한계에 부딪힌 것일까? 돌파구는 과연 없는 걸일까?


사람들이 자동차 정비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은 혹시 모를 정비불량에 의한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함이고, 반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은 건강관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무병장수를 누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치과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추후 보철이나 임플란트로 인해 발생하게 될 고가의 진료를 막기 위해, 즉 비용과 관계해서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안전과 생명처럼 좀 더 높은 가치를 진료에 부여해주지 못하고 이처럼 비용에 치우쳐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모습이 왠지 우리나라 성장의 한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수상가옥과 풍차이다. 둑을 경계로 물보다 낮은 수위에 있는 수상가옥은 매우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걱정을 자아내기도 하다. 이런 수상가옥처럼 물보다 낮은 곳에 있는 ‘Low land’ 를 안전하게, 그리고 네덜란드를 세계 경제침체 속에서도 견실하게 버티게 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풍차라는 기술혁신이다. 산업혁명이라 하면 우린 영국의 증기기관을 떠올리지만, 화석연료를 이용한 증기기관의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자연에너지인 풍력을 이용한 풍차의 발명을 산업혁명의 또 다른 뿌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풍차를 통해 곡식을 빻고 기름을 짜고, 풍차는 실로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요즘에 맞는 자연친화적인 기술혁명이었다. 또한 풍차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과히 놀라운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 치과계에 필요한 건 이런 풍차가 아닐까. 세월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더라도 묵묵히 존재 가능하게 해주는 원천적 기술혁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그런 풍차와 같은 원천 기술혁명을 ‘Easy CDE’라는 원칙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먼저 ‘Communication’ 소통이다. 전문가 집단과 환자 그리고 사회와의 좀 더 쉬운 소통을 위한 진단과 검진장비, 시약 등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치과 질환들을 쉽게  ‘Detection’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경험과 눈에 의한 검진 및 진단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 보다 초기의 질병도 검진·진단할 수 있어야 진행된 다음의 수복위주의 진료 패턴을 바꿀 수 있다. 셋째가 평가 ‘Evaluation’ 이다. 질병의 정도, 치료결과의 정도를 객관적인 수치로 표시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치과에서 숫자로 환자와 소통하는 건 진료비와 약속시간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Easy Communication, Detection, Evaluation’의 원칙으로 새로운 검진시약과 장비를 만들어 낸다면 치과영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것이고, 새로운 가치를 환자와 사회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우리는 의료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에 더 집중하는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파서 오는 치과가 아니고 질적으로 건강한 삶과 수명연장을 위한 필수적인 구강건강유지를 위한 치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필자의 고향 제주도의 거친 비바람과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해주는 돌담과 방풍림 그리고 네덜란드의 풍차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최신기술도 아니지만 묵묵히 그 사회와 집단이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치과계의 ‘돌담’과 ‘풍차’를 꿈꿔본다.


윤홍철
강남베스트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