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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선언 아닌 진료실서 숨쉬는 윤리선언으로”

특별기획/ 이 시대 다시 묻는 'Dental Professionalism'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 간간이 / 자유를 말하는데 /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시인은 ‘사령(死靈)’이라는 시에서 행동하지 않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한민국 치과의료 윤리를 관통하는 활자는 단연 ‘치과의사 윤리선언’이다. 2000년대 중반 협회와 의철학계, 시민단체 등이 합심해 만든 ‘반짝이는 활자’의 존재를 우리 치과계는 너무 잊고 지내고 있다. 이제 하늘 아래 있는 선언을 진료실로 가져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편집자 주 >.


치과의사 윤리선언 아는 치의 극히 소수
끊임없는 토론통해 지침 진화시켜 나가야 

“치과의사 윤리선언.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을 넘어서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느낌이다.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는 치과의사가 대다수고, 규범으로서 공염불 외우는 격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가칭)치과의료윤리연구회’를 출범시키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외부 인사들의 자문을 구하는 등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조영탁 원장(서울지부 법제이사)은 우리의 ‘치과의사 윤리선언’에 대해 위와 같은 평을 했다.

조 원장의 말대로 치과의사 윤리선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치과의사는 많지 않다. 치과의사회 회무에 참여하는 치의에게는 익숙한 선언이겠지만, 진료실에서 묵묵히 진료에 임하는 일반 개원의들에게 윤리선언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현실이 되기 힘든 ‘로망(Roman)’말이다.

광진구에서 개원하는 A원장은 치과의사 윤리선언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외학술 동향 등을 살펴보기 위해 미국치과협회(ADA)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메인페이지 하단에 링크돼 있는 미국치과협회 윤리원칙(ADA Principles of Ethics)을 발견하고, 대한민국의 윤리원칙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A원장은 “사이트에 업로드 돼 있지 않아서 ADA에 비해 찾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한 블로그에서 찾은 우리의 윤리선언은 그야말로 명문(名文)이었는데, 이것을 많은 개원가 동료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근 치협은 치협 홈페이지의 치과의사 전용 사이트에 치과의사 윤리선언, 윤리헌장, 윤리지침을 전재하고, 일독을 권하고 있다.

# 프로페셔널리즘의 ‘정수’

새롭게 탄생한 치과의사 윤리선언, 헌장, 지침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치협은 1971년 7개 항으로 구성된 치과의사 윤리 약 30년 넘게 헌법처럼 보위해 왔다. 그러다 2004년 경 “추상적이고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지부의 의견을 수렴, 대대적인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물론 당시 통용되던 윤리 문구도 훌륭한 것이었지만, 추상적이라는 비판에 계속 노출됐으며 당시 점점 더 증대되고 있던 환자복지에 관한 원칙이 미비해 시류에 맞게 개정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치과의사 윤리선언, 헌장, 지침이다. 치협은 2004년 협회 · 학계 · 법조계 · 시민단체로 구성된 ‘치과의사윤리제정위원회’를 발족, 해외의 사례와 학문적 근거를 참조해 2006년 새로운 윤리선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환자 복지 우선 원칙 ▲자율성 존중의 원칙 ▲사회정의 원칙 ▲진실의 원칙에 근거해 헌장의 골격을 짜고,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의 유지와 관리 ▲환자를 위한 성실한 정보 제공과 의견존중 ▲의료의 질 향상에 헌신 ▲전문인 집단 내 협동과 자율규제 등의 10가지 지침을 제시했다.

헌법 전문(前文)에 빗댈 수 있는 윤리선언에는 ‘직업전문인’, 즉 professionalism에 대해 천명하면서 “치과의사는 사람의 생명과 구강건강을 지킴으로써 인류에 봉사할 임무를 부여받은 직업전문인”이라고 명토 박고 있다.

초안 작성을 주도한 강신익 부산대치의학대학원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프로페셔널리즘이 죽어가고 있다’는 반성적인 흐름이 크게 일었다”며 “우리의 치과의사 윤리선언, 헌장, 지침은 점점 혼탁해지는 치과의료 시장에서 사회와 일종의 계약을 맺은 전문직업인으로의 정명(正名)을 지키기 위한 선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의 치과의사 윤리선언과 헌장, 그 하부 지침들은 치과의사로서의 전문직업 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흔적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특히 윤리헌장을 보면 전문에 “의료전문직은 복잡한 정치적·법적·경제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직업전문주의의 원칙과 가치에 부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기본원칙의 선두를 끌고 있는 ‘환자 복지 우선의 원칙’에는 “치과의사의 일차적 임무가 환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는 것을 천명한다. 의료전문인의 이타주의는 환자-의사 관계의 핵심인 신뢰의 원천이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명신 교수(강릉원주치대)는 “우리의 선언과 지침은 규제적 성격이라기보다 희망적이고 선언적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했다.

# 살아서 진화하는 윤리가 돼야

전문직을 수행하는 전문가 단체의 선언문은 해당 집단의 정체성을 지시하고, 그 집단을 동질한 준거집단으로 엮는 기능을 한다. 각 치과의사회의 총회나 이사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윤리선언을 낭독하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러나 이제 이런 선언, 지침이 엄숙한 총회장이 아닌 동네 치과의원의 진료실에도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강명신 교수는 ADA 방식을 제시한다. ADA는 JADA라는 협회지를 통해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현실에 맞게 지침들을 수정해 나간다.

ADA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윤리법제사법위원회(the Council on Ethics, Bylaws and Judicial Affairs)가 윤리지침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 이곳은 ADA회원들이 실제 임상현장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곳으로, 협회에 의견을 보내면 위원회가 토론해서 답을 협회지인 JADA에 게재하고 회원들과 함께 공유한다.

강명신 교수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윤리를 진료실, 원장실에 가져오려면 살아있는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협회 역시 협회지 등을 통해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거쳐 ‘살아 움직이고 진화하는 윤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내부 자정, 사회교육적 Dental IQ상승, 치의 이미지 제고 등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