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내년에 또 오겠다고 약속해 버렸습니다

Relay Essay 제2120번째

이제껏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갈만 들고 식사를 했는데 이제 직접 음식을 조리해서 다 같이 먹으려니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해외봉사 이야기입니다. 모두 갖춰진 곳에서 몸만 가서 봉사할 때와 진료 장비와 약품들을 스스로 갖추고 진료를 하려니 몇 배는 더 힘이 듭니다.

세관을 통과하려니 커다란 장비에 문제를 제기하고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합니다. 당신네 사람들을 위해 진료봉사를 왔다 해도 막무가내, 진료허가서를 보여주고 현지어에 능통한 봉사자가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겨우 통과를 하였습니다. 이제 배를 타고 3시간을 가야하고 항구에 도착하면 차로 30분을 더 가야 합니다. 비행의 피로와 배 멀미로 고생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도착입니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는 저에겐 이동식 유니트 체어와 콤프레서를 조립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 봉사자가 힘을 합쳐 이제 진료 준비를 다 갖췄습니다.

첫 환자를 보는 것은 설레임입니다. 환자를 볼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이제 진료를 시작합니다. 제 병원에서는 사랑니 하나 발치하면 힘이 들어 휴식을 취해야만 다음 환자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오면 초인적인 힘이 생겨 어려운 발치를 쉬지 않고 해댑니다. 구강외과 전문의에게 의뢰할 만한 난발치도 엘리베이터만 갖다 대면 쑥쑥 나옵니다. 제 스스로에 놀랍니다. “네가 이렇게 발치를 잘했니?”

열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의 이를 발치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이의 얼굴을 보니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팠는데 많이 아팠는데 신음 한마디 안내고 말없이 참은 것이지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정신 차리자, 제발 잘난 척 그만하자” 스스로를 꾸짖고 추가 마취를 하여 발치를 끝냈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발치와 충치치료 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심미적인 치료를 위한 레진을 준비를 해왔습니다. 얼굴은 해맑은 젊은 처자가 입을 벌려 웃으면 중절치가 까맣게 썩어 보기가 무척 흉합니다. 즉석에서 신경치료를 끝내고 레진으로 예쁘게 빌디 업 해주니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이 심미치료로 이 사람의 인생에 작게나마 좋은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요?

힘들 때면 고개를 들어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았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진료를 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는 봉사자들이 아름답습니다. 평생 치과진료를 한 번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저의 육신의 고통은 어쩌면 사치입니다.

4박 6일 짧은 여정이 끝나고 이제 긴 피로가 오겠지요. 지쳐서 음식도 안 들어가고 온몸은 심한 통증으로 힘들지만 내년에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치과의사로서 남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정도의 수고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대의원총회를 힘들게 마치고 육신이 지쳐있었는데 사람과의 갈등, 논쟁, 계략이나 꼼수가 없는 이곳에서 제 마음은 한없이 편했고 영혼은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 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목은 제가 받았지만 여러분의 수고가 없었다면 진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배가 홀쭉해졌습니다. 다이어트 거 별거 아니네요. ^^

이충규 성심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