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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량심(四無量心)-역지사지를 넘어서

Relay Essay 제2163번째

요즈음 여행을 가려면 인터넷을 통해 교통편과 숙소를 미리 예약한다.

조금 거슬러올라가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도보여행에 해질 무렵 만나지는 주막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그러나 주막이 없는 곳에서는 여염집에 부탁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나그네를 문전박대하는 곳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민가에서는 나그네에게 후한 대접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렇게 낮모르는 나그네에게 후한 이유가 무엇일까?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그 민가의 주인도 타곳에 여행을 가게 되면 처지가 바뀌어 여염집에 기숙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께 여쭈었다. “평생 행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이는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로 바로 용서(容恕)의 본뜻이며, “시키지 말라‘는 부정적(금지적, 소극적) 어법을 사용하였다.

기독교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네가 남들에게 대우 받고자 하는 바대로 너도 남들을 대우하라.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요. 선지자의 가르침이니라”(Matthew 7:12), 또는 “네가 남들에게 대우 받고자 하는 바대로 너도 남들을 대우하라”(Luke 6:31). 여기에서는 ‘대우하라’는 긍정적(권유적, 적극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17세기 초에 이를 황금률(Golden rule)이라 칭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가히 대인관계에서 금과옥조(황금률)가 될 만한 말이다.

구약 외경에도 이에 해당하는 금지적 표현이 있다. “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라.“(Tobit 4:15)와 “네 이웃도 너와 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지니, 네가 싫어하는 것을 잘 기억하라.”(Sirach 31:15)가 그것이다.

구약성서 모세오경 중에는, “남들이 네게 행한 악행을 잊고,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라. 네가 너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Leviticus 19:18)와 “그러나 그들을 대하되 마치 네 자신의 백성을 다루듯이 하라. 너 자신을 사랑하듯 이방인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너도 또한 한 때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느니라. 나는 너의 주 하나님이다.”(Leviticus 19:34), 또 “그러므로 나그네를 사랑하라, 왜냐하면 너도 이집트의 나그네였느니라.”(Deuteronomy 10:19) 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역지사지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내용들은 유대교, 이슬람교, 배화교, 불교 등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나타난다.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가 도래하고, 도시국가가 생성되고 생산효율이 증가해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이의 교역을 통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이제 사제의 제례와 희생을 통해 복을 빌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변환기의 혼란과 불안과 공허가 가득한 세상을 채워줄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필요했다. 4대성인과 예언자와 무수한 사상과 철학이 등장하는 변환기인  ‘축의 시대’(기원전 9세기~2세기)에 윤리도덕의 공통된 근간인 황금률(금과옥조)이 있었기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과 기아를 겪으면서도 인류가 멸절되지 않을 수 있었다.

붓다의 가르침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일으키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무한한 마음으로, 1. 모두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친절한 사랑의 마음(자무량심 慈無量心), 2. 모두의 괴로움을 없애고자 하는 연민의 마음(비무량심 悲無量心), 3. 다른 사람들이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면 함께 기뻐하는 마음(희무량심 喜無量心), 4. 친원(親怨)과 애증(愛憎)을 떠나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사무량심 捨無量心)이다.

이는 역지사지의 나와 남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 나와 남이 구분 없이 하나인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에서 나온다. 내 손이 뜨거운 곳에 있으면, 내가 아닌 남인 손을 구하기 위해서 뜨거운 곳에서 손을 빼는 것이 아니라, 나인, 나와 하나인 내 손을 빼므로써 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들로서 지구라는 하나의 집에 하룻밤을 의탁했다. 따라서 모두가 지금 머무는 이 하룻밤 동안은 지구의 주인이다. 함께 잘 머물다가 떠나면서, 내일 밤을 의탁할 새로운 나그네들에게 안락하고 행복한 지구를 물려주어야 한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새로운 변환기를 맞은 제2의 ‘축의 시대’에 하나의 집인 지구를 지키면서, 내일의 나그네에게 안전하게 인계하는 길은 사무량심으로 지구를 감싸는 일이다.
 
 배광식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