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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안경

Relay Essay 제2164,65번째

어느 날 문득 아버지에게 필요한 물건이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새로운 안경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내심 놀랐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특정한 물건을 갖고 싶다고 하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여가시간이면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던 분이 토요일 내내 낮잠만 주무시던 모습이 이상하기는 했었다. 노안(老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딸이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던 찰나, 아버지는 ‘하산할 때 무릎이 아픈 것, 식당가서 주머니에 요지를 챙기는 것, 책 읽을 때 슬그머니 안경을 벗는 것 중에서도 가장 볼품없는 게 세 번째’라며 나름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마침 시내의 큰 안경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는 동생이 생각났다. 몇 달 전에 그 안경점 앞을 지날 때, 모 회사의 다초점 렌즈 광고가 크게 붙어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시내에 있는 번잡한 상점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옷이라도 사 드리려고 함께 백화점에 가면, ‘너희들끼리 보고 와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마’ 하고 엘리베이터 앞 소파에 앉으며 신문을 꺼내들곤 하셨다. 함께 레스토랑에 가면, 딱 식사만 끝내고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는 쓸데없는 일로 점원 아가씨를 너무 자주 부른다며 언니와 나를 타박하곤 하셨다. 그래도 요즘에는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도 드시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도 즐겨 보신다기에, 혹시나 하고 그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그 안경점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거기 보다는 국제시장에 있는 당신의 단골 안경원에 오랜만에 가보고 싶다는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아버지에게 ‘단골 안경원’ 이라는 게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약 그런 게 있을 줄 미리 짐작이라도 했다면, 아는 동생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잘 가시는 그 안경점에 같이 가 봐요’ 이보다 더 깔끔한 제안이 어디 있으랴, 나는 나에게 친숙한 단골 손님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커피 한잔 뽑아들고 치과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던 아주머니 환자, ‘원장님, 그 때 아파서 죽을 뻔 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던 배우 지망생 환자… 아버지는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의 단골 손님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듯 했다.

국제시장에 가기 위해서는 40분 정도 지하철을 타야 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외출은 늘 그랬듯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을 떠나 객지에 살고 있는 나와 가끔씩 함께 외출하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편이었다. 나는 늘 이 점이 부담스러웠다. 어린 시절 엄하게 대하셨고 지금도 타인에게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이제는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몰아쳤던 아버지가 이제는 나의 표정부터 살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하철에 자리가 하나 나기 무섭게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여기에 앉으라고, 아버지가 앉으세요.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그동안 대체 어떻게 서서 오셨을까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흡족한 표정이 되어 신문을 꺼내 드셨다. 신문을 다 읽으신 다음에 아버지는 당신의 오랜 일터였던 ‘영도’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으셨다. 피난민 이야기, 영도다리 이야기, 영도다리 복원 공사 이야기를 거쳐 부산 시정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영도다리 도개 공사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셨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번째 듣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자갈치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아버지, 도착했대요. 자갈치역의 비릿한 냄새가 사뭇 반가웠다.
 
일요일 오전의 국제시장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상점은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혹시나 그 안경점도 문을 열지 않은 게 아닐까, 조바심이 생겼다. 하지만 확신에 찬 아버지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안경은 자주 맞추는 물건이 아니니만큼, 분명 오랜만에 가보시는 것일 텐데. 그러나 저만큼이나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보였다. 어느새 아버지의 빠른 걸음은 시장 구석의 낡은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난간이 없는 좁고 높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아버지가 2층의 유리문을 조용히 당기자, 손걸레로 유리장을 닦고 있던 한 중년의 남자가 뒤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는지요,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부터 찾아 오셨습니까.
책을 읽기가 영 불편해서 말이지요. 오늘은 딸아이와 함께 왔습니다.


나는 그 중년의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분은 이 시장에서도 특히 오래되었다는 이 안경원의 주인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안경을 쓴 안경원 주인은 실제로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멀리서 그 두 명의 남자를 번갈아 보며 서로를 각인시킬 수 있었던 그들만의 접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말수가 적은 평범한 중년의 남자들일 뿐이었다. 약간의 담소를 나누던 두 분은 곧바로 시력 검사를 하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기다리는 동안, 안경원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곳곳의 유리장 안에는 안경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린이용 안경테부터 잠자리 모양의 패션 안경테까지, 7000원짜리 안경테부터 30000원이 넘는 안경테까지, 서로 뒤섞인 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더 고가인 제품은 계산대 너머의 유리장에 따로 보관해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새로운 안경테를 고르셔야 할 텐데, 한번 내가 골라볼까도 싶었지만 단골 안경원을 찾아 국제시장까지 찾아온 아버지였다. 혹시나 따로 마음에 두고 계신 안경테가 있을 지도 모르지, 나는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안경원 출입문 근처의 게시판에는 가위로 오려 붙인 오래된 신문 기사와 낡은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안경원의 주인은 인근 대학에 출강을 했던 것 같다.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쓴 학생들과 찍은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가끔 신문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것도 같았다. 특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맨 아래 쪽에 있는 빛바랜 스냅 사진이었다. 안경원의 주인이 청년이었던 시절에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찍은 평범한 사진이었는데, 뒤 배경에 예전 영도 대교로 보이는 낯익은 다리가 놓여있었다. 그 다리와 바다 앞에서 네 명의 청년들은 청바지를 입고 장난끼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친숙한 사진이었다. 아버지 앨범에서 비슷한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봤던 것일까. 그것은 참으로 묘한 기시감이었다.


아버지는 시험용 안경을 착용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 연습을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다소 울렁거릴 수 있다는 안경원 주인의 설명에,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셨다. 시험용 안경을 쓰고 어정쩡한 자세로 걷고 있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앞에 서서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보는 요령을 설명해주는 안경원 주인, 평범한 두 중년 남자의 사이에는 일상의 연대(連帶)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동향에서 나고 자란 정(情)이나, 술자와 피술자 사이의 신뢰감과는 다른 범주의 끈이었다.

렌즈와 안경테를 당신 스스로 선택한 아버지의 표정은 밝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꺼내는 나에게 아버지는 카드 말고 현금은 없냐며 대번에 눈치를 주셨다. 그러자 ‘카드도 좋아요,’ 라며 유쾌하게 카드를 받아든 주인은 ‘돈 잘 버는 딸이 있다카더니 진짜였는가보네’ 하고는 처음으로 격의 없는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일주일 뒤에 직접 안경을 가지러 오면 다시 한번 사용 요령을 알려 주겠다고 재차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안경원을 나섰더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한산했던 시장이 길거리 음식을 파는 할머니들과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아버지와 나는 국수와 충무 김밥을 사 먹기로 하고 길바닥 한 켠에 쪼그려 앉았다. 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점심은 당신이 사겠다고 하셨다. 아버지 근데 현금 있어요? 이에 아버지는 부랴부랴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확인을 하셨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날은 참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도 가끔 이 날의 이야기를 하신다. 벌써 3년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와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작년에는 함께 새로 복원한 영도 대교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안경원에서 느꼈던 그 묘한 느낌이 기시감이 아니라 예지력 이었던 걸까.

일상의 연대로 묶인 채 마주 보며 서 있던 두 중년의 남자. 어설프지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 때로는 손을 내밀어 안내자가 되는 것, 이는 청바지를 입고 재기발랄한 사진을 찍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던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의지, 타인과의 연대, 내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들인데, 아버지에게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었다. 국제시장 길바닥 한 켠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나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크게 웃었다. 그래도 참 기분은 좋았다.

 정유란 대한여자치과의사회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