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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맑고 향기로운가?

Relay Essay 제2202번째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의 느낌과 소리를 마음에 담으며 어떤 에너지에 이끌려 긁적여 본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지만 내 마음의 비도 깊은 상념으로 승화되어 내가 좋아하는 대금음악과 명상음악이 어우려져 나만의 아우라에 휩싸여 나도 몰래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집 거실의 탁자에는 항상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서 매달 보내 주시는 귀한 책자가 매일 나를 반기고 있다. 거참!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얇은 책이지만 이 녀석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마치 법정께서 그윽한 염화미소의 눈길로 내려다보듯이....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지혜의 말씀인 법정스님의 글이 있고 맑고 향기로운 내용의 글들....

이 세상에서 “맑고 향기롭게”보다 맑고 향기로운 단어와 문장은 없으리라! 마치 우주의 언어와 같이 나를 투명하게 받혀주고 있으며 맑고 향기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갖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지식으로 버무려진 책이 나를 이리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나를 어루만지는 것은 단연 “맑고 향기롭게” 책자이다. 매달 나도 몰래 기다려지는 편지이다. 지금의 집사람과 연애할 때도 이런 설레임이 있었는지 아련하다. 누가? 무엇이? 나를 현재의 지혜의 자리를 차지하고 엄청난 충만감을 담고 있는 나로서의 가치관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이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시간을 거슬러 그동안 무심히 지나치고 있던 나의 삶에서 나라는 의미를 생각케 해준 작은 사건이 있었다.

2009년으로 기억되지만 기독교 신자인 제자(당시 대학 겸임교수)가 나의 생일을 어떻게 알고 좋은 책을 선물하고 싶어 서점에 들러 둘러보던 중 ‘일기일회’라는 책이 우연히 눈에 들어와 나에게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되어 구입하게 되었다면서 보내 온 두툼한 한 권의 책자. 어떻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불교의 색체가 짙은 책이 눈에 들어 왔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물론 나도 당시에는 기독교 신자로서 세상사적인 괴로움으로 종교의 본질에 대한 사고로 방황하며 절 수련을 익히고 있던 때였다.

책의 저자가 <법정>인데 당시에는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제자의 성의가 고마워 펼쳐든 책속에 이끌려 들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밤새 주옥같은 밝은 혜안의 글을 읽고 된장국과 같은 담백한 뒷맛을 느끼며 전율이 느껴졌다.

제자에게 전화해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법정이란 분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무소유로 유명하신 스님이시란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져 그 분이 펴내신 모든 책을 구입하여 밤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밑줄치고 읽고 다시 별표시를 하고 또다시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탐독했었던 지난 시절... 그 분이 펴내신 모든 책을 남김없이 탐독하고 그 분을 한번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 즈음 그 분이 영면하셨다는 떠들썩한 뉴스와 더불어 그 분이 펴낸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고... 아뿔싸! 어떡하지? 그 분이 남긴 귀한 지혜의 말씀을 더 이상 사서 볼 수 없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잔머리를 굴린 결과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지금 서점에 나와 있는 책을 200권을 구입해서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내 주위의 따뜻한 분들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즉시 구입하고 나서의 안도의 마음과 더불어 든든한 마음이란!  허허 거참!!! 그 분이 이 세상에 없는 공허함과 귀한 지혜의 말씀이 단절된다는 안타까움에 나도 몰래 미친 듯이 출판된 모든 책을 5년에 걸쳐 정리하기 시작했다.(당시에 나는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타자를 치는 수준으로 덕분에 타자의 실력이 늘었다) 그 분의 모든 책에서 나오는 차(茶)에 관한 것 , 맑은 싯귀들(詩와 思索) , 법정의 사상을 뒷받침했던 선인들의 인용된 수많은 글들(말과 沈黙), 그리고 그 분의 지혜가 함축된 한자의 묶음들(思索과 沈黙) , 인용한 경전의 글들(下心), 그리고 그 분의 무소유를 바탕으로 한 100여 가지의 화두들(沈黙의 話頭) , 마지막으로 법정이 토해냈던 주옥같은 말씀(법정선사의 眞言)을 타이틀별로 나누어 정리를 하였다.(제목은 임의로 지음)

이 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값진 것이라 자부하는 것이 두 개가 있는데 첫째는 법정선사께서 일갈하신 100여가지 “침묵의 화두”와 둘째로 “법정선사의 진언”이다. 모두 300매 정도의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고 받아보시는 분들이 좋다는 말씀과 더불어 이 좋은 것을 책으로 펴내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법정선사께서 말빚을 거두고 가셨는데 하물며 그 분의 것을 나의 것인양 책으로 내다니 그 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어불성설이다. 하여 지금도  A4용지에 출력하여 지인들에게 드리고 있고 이보다 귀한 선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혹여 독자분 중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개인적으로 연락하시면 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법정선사의 것이므로... 가장 뿌듯한 것은 작년 11월 29일에 지금의 내가 대금이라는 악기를 불도록 지대한 영향을 주신 존경하는 국악음악 작곡자로 유명하신 김영동 선생님의 강연이 길상사에서 있다하여 전주에서 한걸음에 달려가 법정선사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는 맑고 향기로운 곳에 그동안 그 분의 책을 정리한 유인물을 바치고 김영동 선생님의 유익한 강연을 듣고 돌아왔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그 때의 감회가 새롭다. 또한 불교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모태 기독교 신자인 나의 집사람이 웬일인지 길상사로 법정께 유인물을 바치러 간다고 하니 스스럼없이 함께 나서준 것도 의아하다.  법정께서 인도하셨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법정께 절을 올리는 동안 진영각의 마루턱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법정께서 “모든 현상은 그럴만하니 생기고 나타난다”는 가르침이 뇌리에 맴돌고 있다. 어떤 연유로 일면식도 없는 법정이라는 분이 단순히 글을 통해서 나에게 이리도 깊이 자리하게 되었는가? 그렇다! 내가 이럴만하니 이렇게 정리를 하고 그럴만하니 그 분의 위대한 지혜가 나에게 나타남이 아니겠는가?(인연생기 즉 인연법)

내 자랑하는 것 같아 많이 쑥스럽지만 그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을 이렇게 글로라도 풀어 헤치니 너무도 후련한 마음 감출 수 없다. 나에게 나타나는 이 모든 현상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법정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가장 사랑하는 마틴부버의 시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맺고 싶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박현배 박현배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