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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 잡상

Relay Essay 제2216번째

힘들고 지치던 원내생 생활과 국가고시 공부를 마치고, 벚꽃이 피는 동안 훈련을 받고 나니 나는 공중보건의가 되어 있었다. 공중보건의가 되고 처음 느낀 감정은 바로 당혹스러움이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공무원 신분이 되자마자, 나와는 달리 공직생활에 익숙한 직원들과 섞여서 생활하는 것. 그것이 나를 우선적으로 당황스럽게 했다.

내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내게 어색한 것이 당연할 때, 법칙과 규율을 따라 습관을 바꾸며 생활하는 것이 가면을 쓴 것 같았고, 훈련소 생활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치과의사로서의 역할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나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한 명의 치과의사로서 대하는 것은 아주 긴장되는 일이었다. 특히나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통증을 주소로 내원하는 환자들, 그분들이 아픈 이유를 알려달라며 나를 쳐다볼 때마다 내가 치과의사로서 가진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당혹스러움이 차차 가시자 두 번째로 다가온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뒤. 2020년 소집 해제될 때까지의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버리는 시간,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쓸 것이 아니라 알차게 쌓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수련의로, 봉직의로 힘차게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과 비교해서 부끄럽지 않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까? 고민은 깊어지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또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다. 장고 끝에 일단은 비는 시간마다 교과서를 다시 읽기로 했다. 국가고시 대비용 벼락치기 지식이 실제 고민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어느 날부터 치과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진료비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보건소 진료비는 아주 싸게 책정되어 있는 편인데도 진료비 걱정을 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보건소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대로 된 진료를 펼칠 수 없는 보건소의 여건이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보건소에서 스케일링을 하지 않는다. 스케일링이 건강보험 적용이 되자 예전에 보건소에서 책정한 가격이 오히려 보험가보다 더 비싸져 버렸기 때문이다.

관내의 어린이들을 모아서 시행하던 치아홈메우기 사업 역시 실란트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나서 사라졌다. 남은 여력이 다른 구강보건사업에 쓰이면 좋으련만, 보건소에서는 이를 계기로 구강보건사업의 규모와 종류를 줄이려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결국 마지막으로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예방치의학 시간마다 수업을 빼먹거나 졸았던 내가 이 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구강보건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적으로는 스스로의 진료능력을 갈고 닦아야 하고, 외적으로는 보건소에서 구강보건 관련 예산이나 사업이 축소되지 않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나도 한명의 공중보건의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송창목 공중보건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