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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도 꿈꾸던 치과의사 설악산 자락에 이상향을 조각하다

[브라보! 마이세컨라이프] ➋ 안정모 전 치협 부의장
4000평 규모 15년 대역사로 설립된 미술관
관람객 가슴에 예술과 안식 새기는 게 목표


안정모 원장(전 치협 부의장)은 아직 현역이다. 동작구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환자들을 보고 있다. 본인 역시 “힘이 닿는 한 계속 진료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주 느리게 ‘세컨라이프’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목적지는 속초다.

요 몇 년 새 안 원장의 생활은 ‘서4속3’ 정도로 요약된다. 서울에서 4일, 속초에서 3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나흘 남짓 서울에서 진료를 하고, 금토일은 속초에서 보내는 일정이다. 속초에는 그가 사랑하는 설악산, 영랑호 그리고 ‘바우지움미술관’이 있다. 안 원장은 이 미술관의 설립자 겸 재단 이사장이다. 그의 아내이자 유명 조각가인 김명숙 씨는 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에게 미술관은 ‘세컨라이프’이자, 인생 전체를 갈음해도 좋을 이상향으로 보였다.

“원래 설악산 등산을 좋아해서 속초를 자주 찾았는데, IMF 이후에 영랑호 근처에 아파트가 아주 싸게 나왔다고 해서 구매를 했어요. 그때부터 속초가 제2의 고향이 된 거죠. 그러다가 전원생활에 대한 욕심이 났고, 지금 위치에 땅을 조금씩 사들이면서 이렇게 미술관 부지가 확보 된 겁니다.”(안정모)

안 원장의 말을 빌면 미술관의 터를 닦는 자체가 ‘대역사’였다. 당시 3000평에 이르는 미술관 부지의 경사를 고르기 위해서 25톤 트럭 1300대 분량의 흙이 투입됐고, 미술관 광장과 건축물 외관에 박을 돌은 대관령 터널공사에서 나온 파편석을 실어왔다.

그렇게 2015년 6월 20일 개관한 바우지움미술관은 약 4000평의 대지에 3개의 전시관, 2동의 카페, 체험 등을 하는 아트스페이스 등 종합아트센터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A관은 안 원장과 김 관장이 그동안 모아왔던 컬렉션이 전시돼 있고, B관은 김명숙 관장의 작품, C관은 초청 조각전, 잔디정원 등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김영중, 김경승, 김명숙 등 저명 조각가의 조각품도 눈길을 잡아끌지만, 바우지움미술관을 가장 특별하게 각인시키는 것은 미술관 그 자체다.

“시공 과정에서 김인철 교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우리는 일체 어떠한 주문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건축가도 신나게 건축을 하지 않았을까요? 담 하나 하나 ‘돌로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이 탄생했습니다.”(김명숙)

제주도의 명물이 된 지니어스로사이(안도 다다오), 수풍석박물관(이타미 준) 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독특한 느낌이다.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콘크리트 외관에 대관령 터널공사 과정에서 나온 파편석을 박아 거칠면서 웅장한 느낌을 가미했다. 회백색 울산바위의 풍경과 엇나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스민다. 미술관이 자랑하는 또 한 가지의 포인트는 물의 정원. 지하 150미터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얕은 물의 정원을 만들었다. 전면 유리로 돼 있는 A관에서 물의 정원을 응시하면 설악산의 산과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돌이 빚고, 물이 만든 캔버스를 빛이 완성하는 셈이다.

# 치과는 베이스캠프, 미술관은 등정로


안정모, 김명숙 부부에게 미술관은 단지 노후의 여가활동이 아니다. ‘문화의 불모지’에 의미 있는 씨를 파종하려는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지금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도상에 있다. 

“우리가 돈을 벌자고 했으면 서울에서 건물 같은 데 투자했을 거예요. 초기에 군청 공무원들과 싸우면서 인가를 내고, 그 엄청난 공사를 감당하면서 미술관을 설립한 것은 예술과 조각을 이곳 사람들과 함께 향유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 지친 사람들이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안식을 찾는 공간, 그게 이 미술관의 목표이자 컨셉입니다.”

개관 초기 한 달 300여명에 불과하던 관람객은 현재 3000여 명으로 늘었다.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찾는 관람객이 다수고, 체험학습을 오는 어린이 단체, 아마추어 조각가 문하생도 많다. 이미 지역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관장은 경영, 교육, 작품활동에 눈코 뜰 새가 없고, 안 원장은 새벽 4시부터 미술관 일대의 조경에 땀을 쏟는다.

“몸은 고되지만 진료실에 있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마음이 너무 편합니다. 아직 은퇴 계획은 없지만, 천천히 미술관으로 삶을 옮아오고 있는 단계죠. 치과를 떠나게 되면 미술관 사업에 여생을 다 바칠 생각입니다. 지금은 치과가 베이스캠프고 미술관이 등반코스인거죠. 허허”
바우지움미술관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온천 3길 37(033-632-6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