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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i said, “I do.”

오지연의 Dental In-n-Out

희고 빨간 꽃들이 넘실대는 모네의 양귀비 밭과 땅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떠 있는 흰 구름, 푸른 하늘까지도 그림 속 그대로인 프라하에서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의 장례식을 TV로 봤다. 약 보름 전 87세로 타계했음에도 7월에야 장례식이 열린 것은 장례 절차 의논 차 찾아간 아들을 수년전 재혼한 콜의 미망인이 만나주지 않고 경찰을 불러 돌아가게 한 일들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을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BBC의 중계로 체코의 호텔방에서 보며 유럽을 실감 했는데 영국의 존 메이저 전 총리와 테레사 메이 현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마크롱 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전 현직 정상들이 함께 타국의 전 총리 장례식에 문상 와 나란히 앉은 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독일 통일과 유럽 연합 결성을 겪으며 독일 역사상 최장인 16년간 총리였던 콜은 초대총리 아데나워의 이름을 딴 묘지에 안장된다.

사별한 전 부인의 곁일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점에 관해 어느 언론도 별 얘기 없이 지나가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약간 감동했다. “과거 독일이 피해를 줬던 다른 나라들을 유럽이란 이름으로 하나로 뭉치게 했다.”라든가 “어느 한 나라가 압도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를 원하는 그의 취향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는 조문연설에서 보듯 화해와 겸허의 아이콘이었고, “안데르센 동화집을 사려는데 지은이가 누군지는 잊어버렸어요.”라고 했다는 우스개의 주인공일 만큼 대중 친화적이었던 이 위대한 정치가가 첫 부인 사후 6년 만에 78세의 나이로 경제보좌관 출신 35세 연하의 여성과 전격 재혼해 그 후 내내 아들들과 만나지 않고 말년을 지낸 데에는 필유곡절이겠으나 독일은 물론 유럽인들 대부분이 궁금해 하지도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반면 관광지(체코의 경우엔 특히 다리)들에는 비극적 옛 결혼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시골 성에서 은둔하던 왕의 사생아가 마을 이발사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했지만 몇 년 후 아내를 살해하고는 오히려 이발사가 자기 딸을 죽였다고 거짓자백을 하게 했다는 비극이 깃든 다리도 있고,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불륜의 고백 쯤 되려나?)을 밝히라는 왕의 위협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신부가 성자가 되어 지켜준다는 다리도 있다.

1930년대에 이미 ‘우리가 정보 안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 있는가?’라며 탄식했던 T. S. 엘리엇을 기리며 유추하건대, 흔히 “질투”라 불리는 저 재앙 뒤에는 아마도 재산상속과 관련된 도덕적 사악함이 숨어있을 것이다.

최근의 트렌드인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은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하고 사회보장이나 임대차계약에서 결혼과 같은 권리의무를 인정하는 점 등만 동거와 다르지만, 법원에 등록한지 3년이 지나면 결혼처럼 유산도 상속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밀월기간이라 알려진 3년과 저 3년이 영 별개로 보이진 않거니와 그 후에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유산상속이라는 점을 법령에 천연덕스레 명시한 프랑스의 저 씩씩함은 예전 다리의 비극들로부터의 학습효과라고 봐야 할까.

유가족들의 구구한 사정에 관해 침묵해 주는 유럽사회의 관용-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보도하는-이 많이 부러운 지금이지만, 이미 소설가 김연수의 우아한 판결문을 가진 우리의 어린 침묵의 나무에도 머지않아 평화의 열매가 열리리라 믿어본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면, 한창 사랑할 땐 잘 보이지도 않던 마음이 점점 길어진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아 참, 그리고 6월 30일에는 아르헨티나의 한 멋진 호텔에서 올해 서른 살인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가 다섯 살 때부터의 소꿉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