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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우리, 추억을 만듭시다

Relay Essay 제2234번째

나이들 수록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고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많은 사람의 시계가 정말로 빨리 돌아가지는 않겠지요.^^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는 추억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지요. 지난 1년을 뒤돌아 보세요. ‘내가 지난 1년 동안 무얼 했던가?’ 치과에서 열심히 진료하고, 가족과의 여행 한 두 번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분들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있는 추억이 얼마 안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1년이라는 시간이 열흘 정도의 느낌일 것입니다.

반면에 즐거운 일, 슬픈 일, 가족과 함께한 캠핑에 폭풍우가 몰아쳐 밤새도록 텐트 붙잡고 있느라 고생했던 일, 재미난 도전, 가슴이 벅차고 등골이 쏴~~~ 했던 영화, 책, 음악 등, 수많은 추억을 가진 분들에겐 지난 1년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이 많지요. 그래서 지난 1년을 회상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별했던 순간, 처음 그 일을 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기는 쉽지만, 일상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처음 수평매복치를 발치하느라 고생했던 손목의 뻐근함, 처음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날의 긴장감은 기억을 하지만, 열 번째, 100 번째의 시술은 기억이 나지 않듯이요.

“새로운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고, 익숙한 노래가 좋아.”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노래는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들리지 않고 익숙한, 이미 백번도 넘게 들었던 얘기만 반복하며, 그 시절 추억에만 빠져있는 것과 같지요. 물론 스무 살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길보드(!)에서 울려 퍼지던 바로 그 노래와 그녀가 문득 그리울 때엔, 그 노래를 들어야겠지요.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 십 년의 세월동안 그녀만을 추억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보고 듣고 감동할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음악 하나만을 보더라도 너무나 다양한 음악들이 있어서, 평생 음악만 듣는다 해도 다 들어볼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영화, 그림, 건축, 시와 소설… 무엇보다 크고, 넓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을 뿐, 계절이 되면 무심히 피고 지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하루에도 햇빛이 비치는 각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나뭇잎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예술과 자연은 우리가 보려고 해야, 마음을 열어야만 보여지고, 느껴지게 됩니다. 이 것들을 포기하고, 예전의 그 추억 하나만을 좋아라 하는 건 너무나 억울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익숙한 노래만 좋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새로운 노래를 즐겨 들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50년 동안 몸에 밴 칫솔질 습관을 바꾸는 데에는 50년 세월의 무게를 깨트릴 만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듯,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보고, 듣고, 즐기기 위해서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와인이 익숙하지 않은 분에게는 적어도 10병의 와인을 음미하며 마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꾸 마시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맛과 향이 느껴지면서, 어느새 와인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익숙하지 않은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귀와 혀의 감각을 엶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겠지요. 마음의 문이 열려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추억들이 쌓일 것입니다.

저도 이제 50대가 코앞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왜 이리 세월이 빠르냐고 한탄들 하십니다. 한탄한들 소주잔만 늘어나고 뱃살이 늘어질 뿐, 세월이 본인을 위해 미소 짓지 않습니다. 세월을 붙잡기 위해, 행복한 인생을 위해 새로운 음악을 들으시고, 추억을 만드시면 어떨까요?


이형재 전북지부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