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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탈레스, 세상을 건진 철학자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느라 그만 우물에 빠져 어느 하녀로부터 “밤하늘의 별은 보면서, 어찌 발밑의 우물은 못 보십니까?”라고 비웃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 탈레스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서 최초로 철학을 시작한 철학자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가 보기에 너무 뻔하거나 허무맹랑한 말을 읽게 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고전적 상상력’입니다. 그 때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그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하던 시절은 신화적 사고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입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대략 인간의 경험과 기술로 해결하지만, 천재지변과 같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던 시절에 인류는 기우제를 지내고 천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상의 삶을 설명하는 말과 초자연적 세계를 설명하는 말이 달랐고, 후자의 언어와 사고가 신화이고 신화적 사고입니다. 탈레스의 저 한심한 말은 두 개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는 대담한 기획이었습니다. 지상의 언어인 ‘물’로 초차연적 세계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던 것이었죠.

다음 문제는 탈레스의 ‘물’이 우리가 아는 그 ‘물’인가 하는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연결적 사고’입니다. 전해진 단편들을 연결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모든 것은 신들로 충만하다’란 말을 했는데, 그건 ‘영혼이 우주 안에 섞여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물’과 연결해 보면, 그는 물에도 영혼이 있거나 ‘물이 곧 영혼’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두고 고전학자들은 그가 아직 신화적 사고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해서 물체도 살아있는 것으로 보았다고 봐서 여기에 ‘물활론(物活論:hylozoism)’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이때 우리가 동원해야 할 것이 ‘반성적 사고’입니다. ‘물체는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그렇게 당연하기만 한 것일까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탈레스의 단편을 두고 논리적 사고, 인류학적 사고, 철학적 사고를 해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런 그의 생각에 대해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가 구체적인 사물인 ‘물’을 가지고 만물을 설명하는 것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정되지 않은 것(to apeiron)’이라는 막연한 어떤 것을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 합니다. 불, 공기, 흙과 같이 특정한 성질을 가진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특정한 성질을 가진 물을 원리로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그가 구체적인 것들을 넘어서 추상의 세계로 한걸음 내디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경향은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는 그의 말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 구체적 세계를 추상적인 원리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던 최초의 철학자로 철학사에 기억됩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뒤를 이은 아낙시메네스에게서는 그리스철학의 반면을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 사물과 이름 외에 다른 것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리스인에게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은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탈레스의 시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됐을 법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낙시만드로스가 크게 내딛은 한 걸음에서 반걸음 물러섭니다.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 하면서 그는 선배들의 구체성과 추상성의 중간을 잡고자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내딛은 걸음을 완전히 물릴 수는 없는 법, 그는 성질이 정해진 물을 원리로 간주하는 대신 이 원리로 작동되는 세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고안합니다. 입김을 세게 부느냐 약하게 부느냐에 따라 ‘압축되고 촘촘한 공기는 차갑고 희박하고 느슨한 공기는 뜨겁게 된다’고 했다는 그의 말이 대표적입니다. 사물의 원리가 구체적인 사물 속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하는 이 말은 그의 구체성의 정신이 어떻게 선배들의 생각을 종합하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판적 정신도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그리스 철학자들은 어두운 신화적 어둠으로부터 세계를 건져 올렸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주일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및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강사
저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공역),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공역)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