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Relay Essay 제2249번째

오늘 오후, 몹시 더웠지만 환자가 많았다. 약속을 하지 않고 온 환자는 많이 기다려야 했다. 흠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차트를 보니 30대 후반이었고, 2011년에 온 이후 처음이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뭔가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그녀의 얘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원장님이 치료해주고 10여년 정도 아무 문제없이 좋았어요. 그런데, 작년 말에 뭐 먹다가 왼쪽 아래 어금니가 안 좋은 것을 느껴 집 가까운 곳(수도권)에서 치료를 했어요. 금으로 때웠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불편한 거예요. 이가  안 맞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잘 씹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그곳에 가서 얘기하고 치료를 3번 정도 했어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잠시 멈칫) 저에게 정신과치료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치아는 멀쩡한데,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중략) 또 마지막에는 치아에 금이 갔다고 했어요.”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었고, 이것저것 관심있게 물어봤다. 그렇지만 대꾸를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치료하지 않은 치아에 대해 진단하기도 어렵지만, 평을 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지난달에 림프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를 시작했어요. 몸 상태가 나빠서 그런지 불편이 더욱 커지는 거예요. 사실 너무 힘든데… 그 치과는 가기가 싫더라고요. 어디서도 특별한 방법은 없겠다 싶지만 그래도 예전에 원장님에게 치료 받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 이렇게 불쑥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야윈 얼굴, 목에 붙어 있는 많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외상성교합이 의심스러웠지만,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망설였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제가 봤을 때는 많이 불편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이 커진다.
“그렇죠? 저… 불편한 거 맞죠?”
잠시 말을 멈추더니,
“저는 그 원장님이 정신과 가보라고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내 눈에 보이는 문제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고, 바로 치료하자고 했다.
“정말이요? 보통 자기가 안한 치료는 손 잘 안대시잖아요?”
“지금 이것저것 따지고 그럴 상황아닌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치료를 했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랐다. 치료를 마친 후 그녀의 얼굴은 많이 밝아진 듯 보였다.
“기분때문에 그런지 불편이 한결 좋아진 것 같아요”
“그냥 지나가다 오셨어도 잘 봐드려야 하는데,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게 보인다.
“저는 원장님이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고, 여기 온 목적을 다 달성했어요. 정말 힘들게 왔지만 너무 잘 온 것 같아요.”
“그래요. 불편을 덜기 위해 같이 노력해봅시다.”

치과가 계속 바빴지만, 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원장실로 데리고 가 마실 것을 권했다. 그녀는 항암치료 영향으로 침이 매우 적으면서 끈적거렸다. 얘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에게 돌잡이 애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위로의 말과 함께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줬고, 치과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해줬다. 두 사람은 나에게 너무 고마워했고, 특히 여자 분은 눈물을 자꾸 흘렸다.

(남편에게) “오늘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또 봅시다. 웃으면서”

막연히 ‘치과의사를 언제 은퇴해야 하나?’생각할 때 세 가지를 떠올렸었다.
‘눈이 안보일 때, 손이 떨릴 때,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어느덧 눈의 변화는 찾아왔다.
순간 초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다만, 핸드폰을 보기 위해 안경을 벗지는 않는다.)
오늘 만큼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다. 조금 더 치과의사 해도 될 것 같다.


권기탁 전주시치과의사회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