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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치과의사

스펙트럼

정말 오랜만에 수련의 때 보던 두꺼운 교정학책을 펴들고 목차를 살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성장과 발육’ 파트 중에서도 “사회성과 행동발달”이었습니다. 수련받을 때 “성장과 발육”을 1년간 세미나로 공부했지만, 해부학적인 성장과 발육에만 관심을 가졌지, 심리학적인 발달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듯 합니다. 교정치료라는 것이 “해부학적이고 물리적인 치아이동”이라고 생각을 했지, 심리학자도, 정신과의사도 아닌 제가 교정치료를 하며, 환자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가씨였던 치과의사가 엄마가 되고, 우리 아이가 아가에서 사춘기 소녀가 되고 보니, 이제는 단지 12살 환자의 치아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또는 “사춘기 청소년”의 치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원 약속도 잘 안 지키고, 평소에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여중생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데, 치료 중에 아이가 아팠나봅니다. 그 순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욕설! 그 순간 저도, 보조를 하던 치과위생사의 손도 멈췄습니다. 이것을 아는 척 하고 혼내줘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정말 짧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고, 마치 못 들은 척 말을 계속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도 욕을 해 놓고 스스로도 놀랐던 모양입니다. 그 일이 꽤나 미안했든지, 그 이후에는 태도가 변해 협조적으로 치료에 임해 원활하게 치료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 때 아직 저희 아이는 어렸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의 눈빛을 살피며 이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나, 그렇다면 어린이와는 어떻게 다르게 대해줘야 할까 고민을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 살피기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에게 헤드기어를 끼도록 하였는데, 올 때마다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었더니, 아이가 정말 열심히 치료에 임합니다. 치과에도 신이 나서 오구요. 엄마는 아이가 다른 데서와 치과에서의 행동이 다르다고 합니다. 다른 데서는 말도 못할 장난꾸러기였는데, 치과에서만은 믿음직한 환자로 변신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아이의 평소 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구요. 이 소년을 통해, 나는 단지 교정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아이들과 소통을 하고, 아이들에게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봄에 갔던 교정세미나에서 강의하시던 선생님이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수업을 들으신다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교정치료라는 것이 단순히 “치아를 움직이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새로운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까 고민하고, 2년 혹은 그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치과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월요일 아침, 약속장부를 보며, 한 달만에 만날 반가운 아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 친구들도 치과에 오는 일이 즐거운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