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일, 가정 일, 개인적인 일로 염려가 많았던 어느 날이었다.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니는 교회가 치과와 십 분 거리라 다이어트 삼아 점심은 교회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와 치즈로 간단히 먹고 교회에 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의 기도 자리, 분위기는 잡혔고, 기도를 해보는데… ‘나’이어야 할 기도의 타깃이 엉뚱하게도 외부와 타인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일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저 사람 좀 바꿔주세요.’ 등등 외부를 향한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나올 것 다 나오고 나면 ‘나’를 향한 기도도 나오겠지… 문득, 치과 일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치료가 상해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개원 생활 십수 년, 치과에서 환자들 치료하는 게 버겁게 느껴졌나? 졸업할 때 받은 치과의사 면허증의 잉크가 이제 슬슬 말라가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치료’라는 일이 얼마나 리스키한 일인지 깨달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도는 돈을 빼앗기 위해서 칼을 든다.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상해를 입힐 마음도 강도는 가지고 있다. 의사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 칼을 든다. 그러나 간혹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본의 아니게 치료가 상해로
미국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살던 곳은 University of Illnois at Chicago 인근의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고 차례가 되어 미용 의자에 앉았습니다. 미용사는 후덕한 외모의 히스패닉 아주머니였습니다. 머리를 깎다가 호기심으로 한국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미용사에게 질문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까다롭고(picky), 머리카락도 굵고, 팁도 안 줘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인을 대표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이발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시카고의 따가운 햇살 덕에 안 그래도 까맣게 탄 얼굴에 히스패닉 아주머니의 투박한 미용 솜씨까지 더해져 영락없는 farmer의 모습이 되었지만 만족감을 표하고 팁도 두둑하게 챙겨준 후 미용실을 나왔습니다. 당시에 한국 교민들을 만나는 일도 더러 있었는데 교민 사회도 서로 그다지 돈독하지는 않은지 대면하여 지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인 특유의 ‘정’문화는 점점 퇴색하고 경쟁 사회 특유의 깐깐함과 이기심이 팽배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저도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