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진도를 떠나 충주로 가는 거리가 천 리, 즉 400km에 육박하니 적토마를 이용했어도 꼬박 하루가 다 걸릴 거리를 이사하게 되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르려 했지만 천릿길 짐을 옮겨주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홀로 직접 두 번 왕복에 걸쳐 이사를 강행하게 되었다. 두 번 왕복에 사천 리 길을 이삿짐을 옮기고 나니 우리나라 땅이 그렇게 좁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추억을 만들어갈 곳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충주에 왔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텐데, 1년 섬 생활을 하고 와보니 하나하나가 신세계같이 느껴졌다. 우선 보건소가 시청 건물에 같이 있어서 무려 11층짜리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시내에는 무려 마트와 영화관이 있었고, 공보의들끼리 운동 후에 같이 버거킹을 먹으러 갔을 때는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도 되는지 걱정까지 되었다. 충주는 경기도, 강원도, 경상북도 세 개의 도와 접해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통의 요지였던 충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이 많은 편이다. 삼국시대의 흔적인 중원고구려비는 이 지역이 어느정도
지난주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마감 기한과 함께 예상치 못한 원고 작성을 부탁받고 어떤 글을 써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공보의 생활에 대해 편하게 수필을 작성하면 된다는 주문이었지만, 맡고 있는 직책상 오히려 공보의 생활에 대해 적어나가다가 너무 진지해질 가능성만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편하게 써내려갈 주제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주변에 굴러다니는 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30여년 전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하던 여러 종류의 공들. 이거라면 마음 편히 글을 쭉 써내려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재미를 붙인 종목은 야구였다. 야구를 하기에 다소 어린 나이였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직접 파울라인과 베이스를 그려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그 시절 일기장을 보면 매일같이 그날의 스코어와 기록을 분석해 놓은 것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꽤나 열정적으로 즐겼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 덕분인지 학부 때 야구 동아리에 용병으로 초청되어 나쁘지 않은 타율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농구와 축구로 종목이 변경되었다. 몸이 성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