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행복
시험기간마다 한번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그럼 시험지를 받아도 백지상태로 머리가 멍해지는 일은 없을 텐데. 너무나 바쁜 아침 차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온 집안을 무한궤도를 그리며 어지럽히지 않아도 되며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될 텐데,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을 깜빡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삐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증상을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 한다. 이 증후군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종종 드라마, 문학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해 왔다. 인생의 매순간을 기억하며 눈앞에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지금 순간의 일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물건을 다른 곳에 두었다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중요한 할 일을 놓치는 경우도 없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4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에 숨은 멎으셨지만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던 온기와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워지던 몸의 촉감이 기억나지만 견딜 수 있는 건 매년 새해가 찾아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 주혜민 부산대치과병원 전공의
- 2017-06-30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