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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父慈母

오지연의 Dental In-n-Out

지난 일요일에는 5월에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오스타펜코가 코리아오픈에서도 우승을 했고, 두산 베어스가 마침내(일시적일지 몰라도) 2017 KBO 시즌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프로 테니스건 프로 야구건 달의 뒷면만큼이나 나완 거리가 먼 세상일텐데 엉뚱하다고 여기실지 몰라도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혹시나 4강에서 탈락하면 오스타펜코가 일요일의 결승전엔 못 나올까봐 ‘안전하게’ 토요일 경기를 보러 방이동 올림픽 공원 테니스코트까지 갔다. 스타는 스타인지라 센터코트에는 엄청난 가을 햇살과 더위에도 불구하고 7,000명 정도의 많은 관중이 운집했다.

TV로 볼 때 오스타펜코가 실수하고 시무룩해 하거나 득점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늘 바라보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했었는데, 짐작대로 코치를 겸하고 있는 엄마였다.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애써 ‘뭐, 이젠 담담해요’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온 몸이 풍기는 긴장된 분위기는 ‘담담할 리가 없지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범실이 거듭되어 흥분하면 게임 사이에 엄마코치가 코트로 들어와서 오스타펜코를 다독이고 하이파이브를 해 주고 나갔다. 그러고 나면 태엽 감은 인형이 오똑 서듯 스무 살의 딸이 기운차게 스트로크를 하는 것이었다.

1세트를 접전 끝에 지고 2세트는 압승, 그리고 3세트초반까지도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엔 승리하는 경기진행은 거의 언제나 똑같은 것 같았다. 혹시 3세트후반이 되면 상대가 “이러다 또 지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을 시작하다가 스스로 지쳐 넉 다운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번이 맥없이 무너진다. 일요일의 결승전 양상도 비슷했다. 결국, 지고 있어서 흥분했을 때도 상대가 움츠러들 만큼 완벽한 밸런스와 시종일관 엄청난 파워로 내리꽂는 닥공이 오스타펜코의 秘器였다. 잠시도 선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엄마코치의 시의적절한 엄호아래.

악착같이 따라붙는 KT의 9회 초 공격을 막으러 올라온 두산의 마무리투수 김강률이 연속 다섯 개의 볼을 던지자 포수 양의지는 마운드로 올라가 투수를 다독였고 김강률은 (아마도) 덕 아웃의 감독 표정을 살폈을 것이다. 그런데 김태형 감독은 김강률은 본체만체 외면하고 얼굴은 완전히 불펜을 향한 채 즉시 이용찬을 준비시켰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옆얼굴이었지만, “컨디션이 안 좋다면 빨리 바꿔줘야지,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라고 말하는 듯 강력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서,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들킬까 겁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후로 김강률 투수가 딴 사람이 된 듯 호투를 해 이닝을 무사히 넘기고 두산이 6:4로 승리하며 경기가 끝났다.

전기리그 마칠 때 5위로 선두 기아에 13경기 차로 크게 뒤져있던 두산이었는데, 후반기에 이렇게까지 선전하고 있는 데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설마 설마하며 팬도 타 구단도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놓아버릴 수 없게 한 그 뒷심의 매력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다. 긴 시즌동안 밸런스를 크게 잃지 않고 전력을 유지한 편이었던 두산에 비해 예외 없이 여기저기 전력공백이 생긴 다른 팀들은-마치 오스타펜코의 상대들처럼- 싸워 보기도 전에 지레 위축될 수도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다만, 김태형 감독은 오스타펜코의 엄마와는 달리 선수들을 다독이고 감싸기보다는 오로지 승부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서 언뜻 대조적이라고 느꼈는데, 자축(이라니 말해놓고도 꽤 우습지만)의 밤 산책 겸 핫디스커션 끝에 두 경우 모두 선수의 플레이를 향상시켰다는 점에서는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코치 역시 자신의 인생을 다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기본기는 확실히 다져져있다는 전제하에만 할 수 있을 얘기겠지만, 내내 따스하게 바라보던 짐짓 거들떠보지도 않던 간에 승리의 염원으로 가득 찬 코치의 마음을 선수가 읽어내고 흥분을 가라앉혀 좀 더 힘을 냈다면 엄부와 자모 그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더 효과적이거나 합당하다고 딱 부러지게 얘기할 수는 없노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해도 될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