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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바 초콜릿과 레이디 고다이버

시론

정초 연휴에 짧은 여행을 다녀온 실장님이 감사하게도 ‘고디바’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벨기에 초콜릿은 작은 조각 하나가 밥 한 그릇 보다 비싼 고급 초콜릿이라 저도 여행가서 한 번, 그리고 이번에 선물로 두 번째 먹어보았습니다. 예쁘게 싸여진 금색포장지를 벗기면 짙은 갈색의 향이 진한 사각 초콜릿이 나옵니다. 처음 먹었을 때는 부드럽고 향이 정말 진하고 달면서도 쌉싸래한 맛있고 좋은 초콜릿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먹을 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습니다. 전에 먹을 때는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먹었고, 이번에는 추운 원장실에서 지친 몸으로 혼자 몰래 먹어서 그랬을까요?

고디바 초콜릿 조각에는 말을 타고 있는 나체의 여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여인이 초콜릿의 모델이며 주인공인 레이디 고다이버입니다.

11세기 영국 중서부의 코번트리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영주의 아내 레이디 고다이버는 세금을 낮춰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영주는 어림도 없다고 거절하면서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돈다면 모를까”라고 농담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영주는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꺼냈지만, 고다이버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백작부인의 마음에 감동한 주민들은 백작부인이 말을 타고 영지를 도는 동안 모두 집에 들어가 창문을 닫고 밖을 보지 말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고다이버는 이튿날 아침 긴 머리로 나체를 가린 채 말에 올라 영지를 돌았고, 주민들은 커튼을 치고 그 광경을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감사의 예를 표했습니다. 영주는 할 수 없이 약속대로 세금을 내려줬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있는 동안 피핑 톰 이라는 사내만이 몰래 백작부인의 나체를 훔쳐보았는데 천벌인지 나중에 눈이 멀었다고 전해집니다.

세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고민이며 관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습게도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려는 순간 레이디 고다이버의 모습을 보고 1월에 납부해야 할 종합소득세 분납분과 부가세 신고가 떠올라 초콜릿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월급 받고 일할 때는 세금을 제하고 받았기 때문에 내가 세금을 얼마 내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아까운 줄을 몰랐지만 개원을 하여 매 분기마다 세금을 내느라 목돈이 나가고, 직원들 원천세도 매달 내주다 보니 생돈 나가는 듯 얼마나 아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소득구간 세율이 조정되면서 세율이 오름과 동시에 최고 소득구간이 신설되어, 4대보험을 포함하면 실질 세금이 소득의 절반을 넘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 같은 작은 의원 원장은 해당 사항이 없어 부러울 뿐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기가 방실 방실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했을 때 주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기 위해서 타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타인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애쓰는 것은 아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여러 분야의 리더들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여러 사회 정책 결정을 보면 이성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대중이 원하는 것, 소수에게는 원망을 들어도 대중에게 환영 받고 칭찬 받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의료정책에서 끊임없이 일어나 왔고, 세금정책, 노동정책에서도 반복되고 점점 심화되어 가는 것이 걱정됩니다.

세금이 올라가는 것이 속상한 게 아니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개원한 의료인이라서 세금을 내고도 비난 받고 탈세의 주범으로 여론몰이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게 속상하고, 그렇게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이 아깝습니다. 올 한해 세금의 효율적인 배분과 검소한 운용으로 세금을 내는 마음이 씁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몇 주 뒤면 세금이 뭉텅 빠져나가고 통장 잔고가 빌 쩜방 치과 원장의 넋두리였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강희
연세해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