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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에 대하여

Relay Essay 제2279번째

1508년.
그의 나이 33세. 세계 최고의 상업도시 피렌체에서 그는 자기보다 스물 셋이 많은 이미 당대 최고의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에 버금가는 업적을 이루고 있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그에게 시스티나 채플이라고 불리는 예배당의 궁륭형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을 것을 제안한다. 사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이 예배당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교황의 주문을 받지 않으려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바로 4년 전 교황은 그를 로마에 초청하여 기독교 세계의 대왕에 상응하는 자신의 영묘를 세우게 했다. 조각가인 그를 매료시키기에 이 보다 더 야심찬 프로젝트는 없었다. 그는 당장 피렌체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떨어진 카라라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대리석 채석장으로 달려가 이 거대한 영묘를 장식할 대리석 석재들을 선별하는데 6개월을 보낸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와 작업에 착수하여 40여점 이상의 영묘 조각과 청동부조들로 교황의 무덤을 꾸밀 계획을 세웠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 신축공사에만 열을 올릴 뿐이었다. 그는 교황이 영묘 조각에 관심이 멀어진 이유가 베드로 성당 수석 건축가 브라만테의 꼬드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브라만테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까지 의심하며, 공포와 분노로 가득차서 이성을 잃고 로마를 떠나 버렸다.


그런데 지금 교황이 그를 다시 로마로 불러들인 것이다. 조각가인 그에게 그림이라니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라 변명하고 신성 라파엘로에게 맡기면 좋겠다 말하며 어떻게든 이 주문을 맡지 않으려고 버텼다. 이 달갑지 않은 주문이 브라만테를 비롯한 적들의 음모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이 너무 완강하게 나오자 그는 할 수 없이 벽감들 속에다 12사도들을 그려 넣는 아주 간단한 설계에 착수하여 대충 끝내려고 조수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그가 갑자기 예배당 안에 혼자 틀어박혀서 그 곳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4년 동안 미친 듯이 혼자서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어깨가 틀어지고 목과 허리에 이상이 오고 왼쪽 눈이 실명하면서까지 고독한 작업을 실행해 나간다. 왜 그랬을까.

그는 교황의 이 고집스러운 주문이 자기를 시기한 라이벌인 브라만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형 프레스코(fresco)화 제작에 경험과 관심이 적은 자신으로 하여금 이 일을 기어이 맡게 해서 실패를 유도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브라만테에 대한 분노 탓에 미켈란젤로는 붓을 들었다. 그는 이를 갈며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작품으로 라이벌들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fresco는 영어로 fresh라는 뜻인데 회반죽을 개서 벽에 칠하고 그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감으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프레스코화이다. 한 번에 그려야 하고 실패하면 한번 회반죽 칠한 부분 전체를 다 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미술 기법이다. 800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그것도 지상 20 미터 높이의 천장에 홀로 매달려 오로지 자기 자신과 싸우며 고군분투 한 것이다. 이런 정신의 위대함이 전대미문의 명화를 만들고 말았다.

1512년 11월 1일.
마침내 천장화가 세상에 공개 되었을 때, 그는 이 전의 어떤 미술가도 누려보지 못했던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된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2만 5000명의 사람들이 그의 불멸의 천장화를 보기위해 시스티나 예배당에 찾아온다. 한 자존심 하는 그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미소를 살며시 지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천장화를 직접 보았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 속 깊이 감동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한자리에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잊혀 졌었는데 우연히 책을 읽다가 이 천장화의 내용과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림 앞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올라왔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천장에 매달려 거대한 그림판 아래에서 9가지 색깔의 물감만으로 343명에 달하는 서로 다른 형상의 인물들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 천장 아래서 그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맛보지 않았을까. 다시 눈 뜨고 “그런데 갑자기 내가 왜 이 이야기에 꽂혔지?” 개원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초심도 많이 사라지고 정열도 식어졌나보다. 바로 그의 “정열”에 내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게다. 언젠가 다시 그 곳에 방문한다면 이제는 나의 온 몸과 마음으로 감동해 보고 싶다. 그 날을 고대하며 다시 정열적으로 살아야겠다.

박재성 군산 믿음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