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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의 피가 흐르는 치과의사들

삼일절 100주년,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다
“나라 위해 헌신한 조상 따라 봉사 일념”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삼일절을 특별한 마음으로 보낸 치과의사들이 있다. 독립을 위해 일본에 맞서 싸우던 독립투사의 후손인 치과의사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조상을 따라 치과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 치과의사들을 만났다.

이수구 치협 고문은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에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동참했던 이달영 애국지사의 아들이다. 2008년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몰랐다. 해방 이후 보도연맹 사건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 고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가 될까 숨겨왔기 때문이다.


이수구 고문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학창시절 나에 대해 관심을 갖던 선생님을 아버지의 친구인가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애국지사임이 밝혀지며 채워졌다.

이 고문은 “피는 못 속인다더니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건강사회운동본부 이사장인 이수구 고문은 아리랑요양원 설립 등 다양한 곳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려 노력해왔다.

이수구 고문은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된 이유로 아버지 이달영 애국지사를 꼽았다. 이 고문은 “그 당시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렇게 치과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성공해서 가족을 돕겠단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국지사였던 아버지는 이제 우리 가족에겐 자랑스러운 역사로, 후손들에겐 좋은 교훈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은 김중섭 애국지사의 아들 김성욱 치협 감사도 아버지를 자신의 멘토라고 설명했다. 김중섭 애국지사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기밀 서류를 운반하다 일본 순사에게 잡혀 고문을 당해 후유증으로 손바닥을 활짝 펼칠 수도 없었지만 해방 이후 국군으로 활약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김성욱 감사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군 생활 도중 의병 제대를 해야 할 정도로 무릎 통증이 심각해졌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군복무를 끝까지 해냈다”고 설명했다.

김 감사의 아들 또한 최전방에서 복무하며 조부의 뜻에 따랐다. 나라가 혼란했던 시절 군 복무를 하던 아들이 전쟁이 날 것 같다고 전화해오자 김 감사는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다. 나라를 위해 후퇴하지 말고 싸워라”라고 말해 아들을 섭섭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열악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해왔던 아버지 김중섭 애국지사는 반찬 투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김성욱 감사는 “독립운동가들은 밀가루를 물에 풀고 소금을 넣어 끼니를 떼웠다고 말해주셨다. 항상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덕분에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독립운동가 후손 치과의사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해준 전 치협 감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치과의사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이런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면 치과의사들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준 전 감사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로 인해 치과계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해준 전 감사가 소개한 정성화 원장(구리 보스톤치과의원)은 삼일절 당시 탑골공원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정재용 애국지사의 후손으로 중앙 장애우 무료 치과 진료소 창설, 긴급지원은행 회장 역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정성화 원장은 “조부님의 뜻에 따라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더 많은 독립운동가 치과의사, 그들의 후손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치과계가 이들을 찾아 공로를 기리고 예우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이다.

김철수 협회장은 “이번 기회로 치과계에서도 더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 치과의사들을 찾아내고, 치과계의 미래 100년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 치과의사들이 스스로 나서 말해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면에 게재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후손들께서는 치의신보 편집국(02-2024-9200)으로 연락주시면 차후 게재토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