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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들아 너희들의 이름은 뭐니?

중기의 재미있는 구강 세균 이야기(2)


연재순서
1회 구강 세균의 유래
2회 구강 세균 명명법
3회  세균들아 입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니?
4회  치아우식증 관련 세균들의 이야기
5회  치주질환 관련 세균들의 이야기
6회  유익균과 유해균 그리고 균주의 다양성
7회  구강세균과 전신질환과의 관계
8회  잘 있고 있는 듯 하지만 잘 모르는 구강위생용품 사용법
9회  한국구강미생물자원은행은 어떤 일들을 하나요? 
10회  에필로그


치주질환원인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균 종(species) 이름이 있으시죠?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진지발리스’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진지발리스’의 학명은 ‘Porphyromonas gingivalis’ 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여러 학술지에서 보셔서 익숙하실 겁니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ribosomal RNA 유전자(16S 또는 18S)의 핵산염기서열을 바탕으로 ‘역(domain)-계(kingdom)-문(phylum)-강(order)-목(order)-과(family)-속(genus)-종(species)’이라는 분류 체계에 따라 학명을 갖게 됩니다. 예전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아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꽁트(동명의 동화를 각색)가 있었죠. 그런데, 그 아이가 물에 빠졌고, 이를 본 동네 분이 부모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 데, 아이의 이름이 너무 길어서 결국은 아이를 구할 수가 없게 되었죠. 이처럼 생명체의 이름도 모든 분류체계를 포함하여 사용한다면 기억하기도,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명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속명과 종명만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이들 학명을 기록하는 데는 규칙이 있습니다. 속명과 종명은 이탤릭체를 사용하고, 속명의 첫 번째 알파벳은 대문자로 쓴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정자체로 쓰고 대신 밑줄을 사용하여 기록합니다(예: Porphyromonas gingivalis).

‘P. gingivalis’ 라는 이름은 어떻게 얻게 된 것일까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세균 종이 발견되면, 이들의 특성을 밝혀서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누가 작명을 했을까요? 맞습니다. 이를 발견한 과학자가 라틴어법에 맞게 학명을 부여합니다. 이때 속명은 사람의 ‘성(姓, family name)’과 같고, 종명은 사람의 ‘이름(名, given name)’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그 뜻을 가지고 있지요. 제 이름은 한자어로 ‘鞠重基’입니다. 이를 풀어보면 ‘가르치다-무거운-터(자리): 한 곳에 자리를 무겁게 잡고 가르치며(공부하며) 살아라’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저의 운명을 예상하시고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럼 ‘P. gingivalis’ 라는 이름의 뜻을 살펴볼까요. ‘Porphyromonas’ 는 그리스어의 보라색(purple)의 어원인 ‘porphyreos = porphyrin’과 단위(unit 또는 cell)의 어원인 ‘monas’에서 온 것으로 ‘porphyrin cell’이라는 의미이고, ‘gingivalis’ 는 치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P. gingivalis’ 는 ‘성장하는 데 혈액을 필요로 하고 치은(치은염)과 관련이 있는 세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P. gingivalis는 적혈구에서 유래된 hemin을 이용하여 protoheme을 생산하고, 이러한 protoheme이 집락에 축적되면서 집락이 검정색을 띄게 됩니다(그림 1). 이러한 이명법에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성이라 할 수 있는 속명은 바뀌어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종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 gingivalis도 예전엔 ‘Bacteroides gingivalis’ 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Bacteroides 속 중에서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을 이용하지 못하면서 검정색 군락을 이루는 종들을 Porphyromonas 속으로 독립시킨 것입니다(물론 여러 분류학적 실험을 거쳤지만요). 그러면, ‘Peptoniphilus mikwangii’‘Fusobacterium whasookii’ 라는 세균 종은 어떤 의미의 세균 종일까요?(그림 1) 두 세균 종은 각각 ‘pepton을 좋아하는 김미광이라는 연구자가 분리한 세균’과 ‘방추형(filamentous) 모양을 갖고, 김화숙이라는 연구자가 분리한 세균’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두 연구자는 제 제자들입니다. 제가 대학원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신균종을 최초로 분리하면 여러분들의 이름을 따라 학명을 지겠습니다”라고 약속 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논문이 게재 확정되기 직전에 주편집자로부터 논문에서 종명의 어원이 되는 저자를 빼든지, 그렇지 않으려면 종명을 새로이 부여하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두 제자 중 한 제자만 연락이 되어서 의향을 물었는데, 망설여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논문은 쉽게 잊혀지지만, 세균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공동저자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Peptoniphilus mikwangii’ ‘Fusobacterium whasookii’ 라는 세균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균의 학명에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미생물학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들을 기리면서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표준균주(type strain)이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모든 세균 종에는 표준균주가 있습니다. 그러면 각각의 종들에는 몇 개의 표준균주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오직 한개의 표준균주가 있습니다. 즉, 여러 분류학적 실험 방법을 통해 새로운 특성을 갖는다고 밝혀진 최초의 균주가 바로 표준균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의 경우 표준인간은 누구일까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담이 표준인간이 되는 것입니다(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입니다). 이처럼 새롭게 확립된 종의 표준균주 이름(균주명)은 어떻게 지을까요? 이것도 발견한 과학자의 마음입니다. 예를 들자면, P. gingivalis의 표준균주 명은 ‘2561 (= ATCC 33277)’입니다. 이때 표준균주라는 의미를 균주 이름에 부여하기 위해 균주명 마지막에 위첨자 ‘T’를 붙여 ‘P. gingivalis 2561T (= ATCC 33277T)’라고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상 표준균주 명에 윗첨자 ‘T’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위 첨자 ‘T’는 균주 명에 포함되지 않고, 표준균주임을 강조할 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류학 논문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된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지어준 세균 종들의 학명이 진짜 세균들의 이름일까요? 우리는 한 번도 세균들에게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세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들과 대화를 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이 새로운 세균 종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의 특성을 파악해서 학명을 부여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세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세균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물어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 때를 기다리며 그림 2와 3에 있는 세균들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볼까요? 그림 2에 있는 사진은 세균들의 군락을 실체현미경으로 하나하나씩 촬영한 것입니다. 세균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저마다의 예쁜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이리 예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균들과 사랑에 빠졌네요. 그림 3에 있는 사진들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세균에 따라 서로 뭉쳐서 자라는 것도 있고 서로 떨어져서 자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겐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제가 학부 때는 세균 학명이 라틴어법에 따라 명명된다는 것도 몰랐고, 세균 학명을 어원학적으로 분석할 줄도 몰라서 세균 이름을 외우느라 무척이나 고생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세균 이름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아시기 때문에 좀 더 세균 학명과 친근해 지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음 호에서는 여러 종의 구강 세균들이 사람의 입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중기 교수
조선치대 구강생화학교실 및 한국구강미생물자원은행